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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주군(北濟州郡)

인문지리지명

 제주특별자치도 북부에 위치했던 군으로 2006년 제주시에 통합된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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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북부에 위치했던 군으로 2006년 제주시에 통합된 행정구역.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서쪽·북쪽은 바다에 면해 있으며, 남쪽은 서귀포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08′∼126°58′, 북위 33°16′∼34°00′에 위치한다. 면적은 722.42㎢이다. 인구는 9만 7744명(2005년 현재)이었다. 4개 읍, 3개 면, 84개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군청은 제주시연동에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1. 지형
이 군은 동서로 긴 타원형의 제주섬에서 한라산이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는 관계로 광활한 용암평원이 발달해 있다. 북서 산록의 조천읍과 구좌읍의 접경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의 측화산군에는 흙붉은오름(1,391m)·성판악(城板岳 1,215m)·거문오름(718m)·민오름(519m)·부대악(469m)·산굼부리(437m)·민오름(362m)·아부오름(226m)·당오름(277m) 등 크고 작은 58개의 측화산이 집중 분포하고 있다.
2. 산·계곡
서부에는 거문덕오름(402m)·고내봉(175m)·천아오름(797m)·삼형제오름(1,132m)·문도지오름(260m)·느지리오름(225m) 등이 분포한다. 측화산이 다수 분포함과 동시에 표선리현무암이 발달한 위에 용암의 차별냉각에 유리하도록 완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곳곳에 용암터널이 형성되어 주요 관광명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3. 강·하천
하천으로는 옹포천(甕浦川)·한림천·금성천 등이 있으나 광활한 용암평원을 구성하는 화산회토 위에 용암터널과 용암공동이 부분적으로 붕괴되면서 ‘숨골’이라는 우수침투공이 발달하여 해안에 이르기 전에 빗물이 모두 지하수화함으로써 하천의 발달은 면적에 비해 미약한 상태이다. 옹포천은 말단에서 지하수가 용출되어 상류천(常流川)이 된다.
해안선은 대체로 단조롭고 주로 현무암초 및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한림항을 제외하고는 천연의 항이 없다. 한림읍의 협재리, 조천읍의 함덕리, 구좌읍의 동·서 김녕리 등은 사빈해안이며 수심이 얕고 파도가 없어 천혜의 해수욕장이 되고 있다.
부속도서는 유인도 6개, 무인도 44개가 있다. 그중 북쪽의 추자군도, 동쪽의 우도, 북서쪽의 비양도, 서쪽의 차귀도 등이 대표적인 섬이다.
4. 기후
기후는 일부 지역이 난대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어서 아열대성 식생이 분포한다. 한라산은 고산지의 특징 때문에 난대·온대·한대의 기후로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제주시를 경계로 서부는 겨울에 북서계절풍의 바람머리가 되어 겨울계절풍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동부 역시 봄에서 여름에 걸쳐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의 바람머리가 되어 바람 많은 제주에서도 가장 바람이 많은 지역이 된다. 연평균기온은 15.4℃로 대체로 온화하며, 1월 평균기온 4.8℃, 8월 평균기온 25.8℃이고, 연강수량은 1,440㎜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1. 고대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애월읍 어음리에 빌레못동굴이 있다. 이곳에서는 갈색곰·붉은사슴·노루 등의 동물화석과 긁개 등을 포함한 박편석기(剝片石器)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조천읍 북촌리 바위그늘 주거지에서 압인(押引) 점렬(點列)무늬토기편이 나왔으며, 한림읍 월령리 한들굴에서도 같은 토기와 골각기 등이 수습되었다. 또, 군내 여러 곳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인 고인돌·선돌·조개더미 등이 발견되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곳은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 ‘삼성개벽신화’에 의하면 제주에는 본래 사람이 없었는데,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에서 삼신인이 솟아났다고 한다. 이들은 땅이 거칠기 때문에 수렵을 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목함을 탄 벽랑국(碧浪國)의 사자가 삼신인의 배필이 될 세 공주와 소·망아지, 오곡의 종자 등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왔다. 그래서 삼신인은 이들 공주를 각각 배필로 삼고 활을 쏘아 거주지를 정하여 살았다고 한다.
또한 각종 문헌에는 고을나(高乙那)의 15세손인 고후(高厚) 등 삼형제가 신라에 입조하여 탐라라는 국호를 받고, 성주(星主)·왕자(王子)·도내(徒內)라는 작호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476년(문주왕 2)에 탐라가 방물을 바쳤고, 498년(동성왕 20)에는 백제에 복속했다고 한다.
2. 고려시대
925년(태조 8) 고려에 방물을 바쳤으며,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인 937년에는 탐라왕 고자견(高子堅)이 태자 말로(末老)를 파견, 입조함으로써 고려의 번국(藩國)이 되었다.
1105년(숙종 10)에 이르러 탐라군으로 개편되었고, 1153년(의종 7)에는 군을 현으로 강등하여 최척경(崔陟卿)을 탐라령으로 삼아 부임하게 하였다.
고종 연간에는 탐라를 제주(濟州)라 개칭하여, 부사 및 판관을 두었다. 1271년(원종 12)에 김통정(金通精)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웅거하여 약 3년을 지냈는데, 김방경(金方慶)이 이를 토벌하였다.
그뒤 원의 직할령이 되었으며, 1277년(충렬왕 3)에는 원의 목마장이 설치되었다. 1294년 고려는 원나라에 요청하여 탐라를 환부 받았고, 1300년 동도(東道)·서도(西道)로 양분하여 14개의 현촌(縣村)을 설치하였다. 그중 귀일(貴日)·고내(高內)·애월(涯月)·곽지(郭支)·귀덕(歸德)·명월(明月)·신촌(新村)·함덕(咸德)·김녕(金寧) 등이 북제주군의 현촌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1362년(공민왕 11)에 원은 목호(牧胡)의 난으로 또 다시 탐라만호라는 관리를 두어 관할하다가 1367년에 고려의 요청이 있자 탐라를 완전히 고려에 환부하였다. 1374년탐라에서 발호하던 목호의 세력이 최영(崔瑩)에 의해 토벌되었고, 원의 정치적 세력은 소멸되었다.
3. 조선시대
1402년(태종 2)에 탐라의 성주·왕자가 스스로 참칭(僭稱)이라며 칭호를 바꾸어달라고 요청해 오자 1404년에 이르러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각각 개칭했고, 1445년(세종 27)에 좌도지관을 상진무(上鎭撫), 우도지관을 부진무(副鎭撫)로 개칭하였다.
1416년(태종 16)에는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을 제주목이라 하여 목사를 두어 행정을 관장하게 했으며, 남쪽을 다시 동서로 양분하여 동쪽은 정의현(旌義縣), 서쪽은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고 현감을 두어 행정을 관장하였다.
1609년(광해군 1) 판관 김치(金緻)가 동서방리에 약정(約正)주 01)을 두었다. 제주목에는 중면·좌면·우면을 두었으며, 뒤에 제주목의 좌면을 신좌면과 구좌면으로 양분하고 우면도 신우면과 구우면으로 나누었다. 현재의 북제주군은 신좌면·구좌면·신우면·구우면을 합친 것이다.
4. 근대
1895년 지방관제의 개혁으로 전국이 23개의 부로 개편됨에 따라 제주는 제주부가 되어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었다. 따라서, 제주부는 제주·정의·대정 등의 3개 군을 관할하였다. 1896년 다시 13도제가 실시되면서 도·부·목·군으로 구분됨에 따라 제주도는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면서 제주목으로 칭하게 되었다.
1906년 부를 군으로 개편하면서 제주목이 폐지됨에 따라 목사도 없어졌다. 1909년 정의·대정 2개 군을 제주군에 통합했고, 일제강점기인 1915년 제주군을 없애고 도사(島司)를 두어 경찰서장을 겸하게 하였다.
5. 현대
광복 후인 1946년 도제 실시로 전라남도 관할에서 분리, 독립하여 제주도(濟州道)가 되면서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의 2개 군이 되었고, 북제주군은 제주읍·구좌면·애월면·한림면·추자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55년제주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었고, 1956년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한림읍 서부지역에 한경면을 신설하였다.
1961년 군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1읍 5면을 관할했으며, 1980년에는 애월·구좌 2개 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5년 조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6년에는 구좌읍 연평리가 분리, 독립하여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2006년 7월 1일부로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함에 따라 북제주군은 제주시에 통합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이 군의 구석기시대유적으로는 1973년에 발견된 애월읍 어음리의 빌레못동굴(천연기념물 제342호)이 있다. 이 유적에서 사슴과 갈색곰의 턱뼈 등이 발견됨으로써 7∼8만 년 전에 제주도에 사람이 살았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 선사시대의 유적층으로는 조천읍에 북촌리선사주거지유적(제주도 기념물 제42호), 애월읍 곽지리에 곽지패총(제주도 기념물 제41호) 등이 있다.
성터로는 조천읍 북촌리와 애월읍 애월리에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다는 환해장성(環海長城)의 터를 비롯하여, 고리 모양의 석성이었던 조천읍 조천리의 조천성지,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다는 한림읍 명월리의 명월성지(제주도 기념물 제29호), 그리고 애월읍 애월리의 애월성지와 수산리의 수산성지, 한경면 고산리의 차귀성지(遮歸城址) 등이 있다.
또, 애월읍 고성리·상귀리의 항파두리항몽유적지(缸坡頭里抗蒙遺蹟地, 제주도 기념물 제28호)에는 삼별초의 난 때 김통정이 최후 거점으로 삼았던 항파두리성의 터가 있다. 이밖에 군내 여러 지역에 봉수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사찰들이 많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누각·건물로는 임금에 대한 연모의 충정을 보냈다는 조천읍 조천리의 연북정(戀北亭,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3호), 신촌리의 신촌향사(新村鄕舍,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8호), 추자면 영흥리의 추자처사각(楸子處士閣,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9호), 대서리의 최영장군사당(제주도 기념물 제11호) 등이 있다.
또한, 한경면 용수리의 절부암(節婦巖, 제주도 기념물 제9호), 한림읍 명월리의 명월대(제주도 기념물 제7호), 구좌읍 하도리의 별방진(別防鎭, 제주도 기념물 제24호), 조천읍 조천리의 조천비석거리(朝天碑石─, 제주도 기념물 제31호) 등의 유적도 있다.
한편, 갓일(중요무형문화재 제4호)·해녀노래(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를 비롯해 구좌읍 행원리의 영감놀이(제주도 무형문화재 제2호), 구좌읍의 송당리마을제(제주도 무형문화재 제5호), 애월읍의 납읍리마을제(제주도 무형문화재 제6호), 한림읍 귀덕리의 정동벌립장(제주도 무형문화재 제8호), 구좌읍 동김녕리의 멸치후리는 노래(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0호)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도는 난대림에 속한 화산섬으로 식생(植生)이 특이하여 식물 및 식물자생지가 보호되고 있다. 그중 구좌읍에 제주도구좌읍문주란자생지(濟州道舊左邑文珠蘭自生地, 천연기념물 제19호), 조천리에 선흘리백서향 및 변산일엽군락(제주도 기념물 제18호)이 대표적이다.
또, 애월읍 금덕리에 금덕무환자나무 및 팽나무군락(제주도 기념물 제6호), 수산리에 수산곰솔(제주도 기념물 제8호), 광령리에 광령귤나무(제주도 기념물 제26호), 조천읍 선흘리에 동백동산(제주도 기념물 제10호), 한림읍 명월리에 명월팽나무군락(제주도 기념물 제19호), 월령리에 선인장자생지(제주도 기념물 제35호) 등이 있다.
아울러 구좌읍 동김녕리에 제주도김녕굴 및 만장굴(濟州道金寧窟─萬丈窟, 천연기념물 제98호)과 월정리에 당처물동굴(천연기념물 제384호), 한림읍 협재리에 제주도용암동굴지대[昭天窟·黃金窟·挾才窟, 천연기념물 제236호], 조천읍 교래리에 제주산굼부리분화구(천연기념물 제263호) 등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형이 많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사수도해조류번식지(천연기념물 제333호)와 애월읍에 제주도어음리빌레못동굴(천연기념물 제342호)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는 애월읍 하가리와 신엄리의 연자매(중요민속자료 제32호)가 있다. 애월읍 하가리의 잣동네말방아와 신엄리의 당거리동네말방아는 예전에 제주도의 동네마다 약 30가구에 하나씩 갖추어져 있던 말방아의 모습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말방아는 주민들이 공동소유하는 농기구일 뿐만 아니라, 연자매계(렛접·방이접·렛제·방이제라고 일컬음)를 중심으로 한 상호부조조직이 친족조직 다음으로 강력했으므로 마을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밖에 제주도 일원에 있는 제주도의 초가(제주도 민속자료 제3호), 제주도의 와가(제주도 민속자료 제4호)가 이곳에도 보존되고 있으며, 조천읍 조천리에는 만세동산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1. 교육
제주도민의 교육열은 예로부터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선조들 대부분이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주에 건너온 선비들이었으며,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맥을 이어온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유배인과 지식인들이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거나 숨어 살면서 흥학(興學)과 교화(敎化)에 힘썼고 척박한 땅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도민들이 자제들만이라도 잘 키워보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831년(순조 31) 한림읍 명월리에 우학당(右學堂), 구좌읍 세화리에 좌학당(左學堂)이 세워졌으며, 1834년에 남학당(南學堂), 서학당(西學堂)이 건립되었다.
제주도에는 일본·중국 등지의 표류민 내왕이 상당수 있어서 통역을 위해 중인 가운데 뛰어난 자를 1672년(현종 13)부터 중국어·일본어 통역교육을 골라 실시했고, 1687년(숙종 13)에는 안남어(安南語) 통역교육도 실시하였다. 『대전통편』에 의하면 그 교육정원이 한학 15명, 왜학 16명으로 되어 있고 대개 중인계급 통역관 자제들이 세습적으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7년(융희 1) 군수 윤원구(尹元求)에 의해 제주관립보통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사립 의신학교(義信學校)가 설립되었다가, 1910년에 설립된 제주공립농업학교에 흡수, 통합되었다. 또한, 1909년 사립 신성여학교(晨星女學校)가 프랑스 선교사인 마르셀로 구마실신부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911년에는 대정보통학교(大靜普通學校)가 개교하였다.
1920년대에 이르러 1면1교제가 실시되면서 조천(朝天)·구우(舊右)·신우(新右)·애월(涯月)·구엄(舊嚴)·한림(翰林)·신창(新昌) 등의 공립보통학교와 조수(造水)·고산(高山)·귀덕(歸德)·하도(下道)·중앙(中央) 등의 사립보통학교가 세워졌고, 일제강점기 말에는 간이학교·초등학교 등이 꽤 많아졌다.
1945년 광복 후 2년간에 걸쳐 도내에 초등학교 44개교, 중등학교 10개교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증가된 것이었다. 1948년 4·3사건으로 제주도 내의 초등학교 56개교와 중학교 1개교가 소실되었으나 교육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200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2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7개교와 제주관광대학이 있다. 이 군의 주민들은 예전부터 마을마다 한시와 시조창을 즐기는 음사(吟社)조직과 마을 단위의 민속보존회를 갖추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영등굿에서 치러지는 ‘떼몰이놀이[躍馬戱]’와 차귀본향놀이가 있고, 이밖에 줄다리기·연날리기 등이 있다.
영등굿은 풍어를 비는 굿으로 제주도 전역 해안마을에서 거의 치러져 왔는데, 그 신의 이름이 ‘영등’ 또는 ‘영등할망’이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우도면 소섬에 들어와서 ‘보말’이라는 고동을 까먹으며 제주도의 해안을 빙 돈다고 한다.
이때 전복·소라·미역·우뭇가사리 따위의 씨를 뿌려주어 해산물을 풍부하게 만든 뒤, 그달 15일에는 다시 소섬을 거쳐 돌아간다. 이 영등할망은 바다 멀리 있는 상상의 나라에서 찾아드는데, 농사도 잘 해준다고 한다.
어부와 해녀들은 새벽에 동네 단위로 굿을 치르기 시작해서 해질 무렵 ‘배방선’이라는 송신의례로 끝낸다. 이때 짚으로 미리 만들어놓은 자그마한 배에 약간의 제물과 백지, 돈 따위를 함께 실어 어선에 얹고 바다 멀리 나가서 동쪽으로 띄워 보낸다. 이는 영등할망을 정성으로 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음력 2월 초하룻날 귀덕·김녕 등지에서는 나무 장대[木竿] 열둘을 세워 신을 맞아 제사한다. 애월포(涯月浦)에 사는 사람은 뗏목 형상의 말머리 같은 것을 만들어서 채색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를 하며 신을 즐겁게 해주다가 보름날이 되면 파하는데 이를 연등이라 한다. 이 달에는 배타는 것을 금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약마희들’, ‘배방선’할 때의 놀이를 ‘떼몰이놀이’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림읍 귀덕에서나 구좌읍 김녕에서는 푸른대를 세워 상징신이 내려오는 길을 닦고 신을 맞아들이며, 애월읍 애월리에서는 떼의 모양을 말머리와 같이 만들어서 고운 비단으로 꾸미고 ‘떼몰이놀이’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낚싯거루가 드물고, 거의 떼로 고기잡이를 했기 때문에 이른바 ‘배방선’에 떼를 썼을 법하며, 실제로 이를 목격했던 사람도 있다(구좌읍 남무 朴仁珠). 더구나 일본 오키나와 일대와 동남아시아의 경조민속(競漕民俗)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차귀본향놀이는 마을의 수호신을 즐겁게 해주는 민속놀이로 한경면 고산리에 전해온다. 이 놀이는 음력 8월 16일 밤에 본향의 참배로 시작되는데, 먼저 횃불잡이가 심방(무당)의 인도를 받으며 나가면 농기와 영기를 든 기수들, 용·거북·법성 등의 탈을 쓴 목동들이 따르고 그 뒤를 농악대가 줄지어 본향당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본향당에서 제의를 베푼 뒤 풍물을 치면서 마을의 공터로 돌아온다. 여기서 용·거북·법성 등이 함께 어울려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폭풍우를 일으키려는 용과 이를 저지하려는 거북·법성 등의 갈등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용이 불같이 노하지만 끝에 가서는 다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을사람들의 갈채 속에 심방이 나서서 긴 노끈으로 용을 매어 거북과 법성을 앞세우고 농악대를 뒤따르게 한 뒤 마을을 돈다. 이때 마을사람들이 걸궁노래를 부르며 부잣집을 방문하면 집주인은 돈·쌀·떡 등을 내주고 마당에서는 한바탕 농악놀이가 벌이진다. 호별 방문을 마친 뒤에는 모아진 음식을 놓고 마을사람들이 공터에 모여 밤새도록 논다.
3. 동제
제주도 내의 다른 시·군과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이 따로 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성들은 유교식으로 포제(酺祭)를 주관하고, 여성들은 심방을 불러서 당굿을 주관하는 것이다.
포제는 음력 정월 첫 정일(丁日)에 마을마다 마련된 각 포제단에서 포신지위(酺神之位)라는 지방을 붙이고 돼지 한마리와 여러 제물을 올리는 제의이다.
삼헌관(三獻官)·집례(執禮)·대축(大祝) 등 12제관이 홀기에 따라 향교의 석전제(釋奠祭)를 치르는 것과 같은 절차로 거행한다. 마을과 각 가정의 강령을 비는 제례이므로 동민들의 정성·금기·의무·참여가 엄격하다. 요즈음도 이 포제를 행하는 마을이 많다.
여성들이 주관하는 당굿은 대체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동네의 본향당에서 치러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점점 그 원형이 사라져가고 단조로운 기원 형식으로 변모되고 있다.
4. 설화·민요
이 고장의 설화로는 김녕뱀굴에 얽힌 이야기, 월계 「진좌수이야기」, 김녕굴당(金寧窟堂)의 주신인 태자 「괴뇌깃도이야기」 등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뱀굴에는「이물(異物)퇴치설화」가 전한다.
뱀굴에는 항아리만큼이나 몸통이 큰 뱀이 살면서 다섯 섬들이 매년 처녀를 한 사람씩 바치고 굿을 하게 하였다. 만약 이를 어기고 굿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농사를 망쳐놓아 흉년이 들게 하였다. 그러나 양반들은 딸을 희생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당이나 천민의 딸들이 시집도 가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조선 중종 때 판관으로 부임한 서련(徐憐)이 이 일을 듣고 분개하여 굿을 하게 한 뒤 굴에 들어가 처녀를 구해 내고 뱀을 찔러 죽였다. 이를 본 무당이 뒤를 보지 말고 빨리 성 안으로 들어가야 화를 면한다고 하였다. 그 말대로 성 동문 밖까지 부지런히 이르렀는데, 군졸 한 사람이 “피비[血雨]가 온다.”고 외치는 바람에 뒤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피벼락을 맞고 죽었다.
이 피비는 죽은 뱀의 피가 하늘로 올라가 서판관에게 복수하려고 따라온 것이었다. 그뒤로 어부들이 이곳에 이르면 희생이 되므로 돼지머리를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 화를 면했다고 한다.
한림읍 명월리에는 의술에 능했던 명의「진좌수이야기」가 전한다. 진좌수는 어렸을 때 자기집에서 10리 쯤 떨어진 서당에 다녔다. 하루는 돌아오는 길에 전에는 없던 기와집이 생겼고 그집에서 예쁜 처녀가 나와 그를 불러 오색구슬을 입에 물고 굴리다가 소년의 입으로 넘기곤 하였다. 이런 유혹이 수십 일 되풀이되면서 소년은 점차 수척해졌다.
서당 훈장이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단단히 이르기를, 처녀가 구슬을 주거든 꿀꺽 삼키고 하늘·땅·사람의 순서로 보라고 하였다. 다음날 훈장의 당부대로 구슬을 삼키자 처녀는 구미호(九尾狐)로 변해 마구 덤벼들었다. 겁에 질린 소년은 걱정이 되어 달려온 훈장의 얼굴을 먼저 보고 말았다. 그뒤 소년은 ‘상통천문하달지리(上通天文下達地理)’는 못 하고 인간세계의 명의가 되었다.
그밖에도 뱀과 교접하여 즉사 직전에 이른 처녀를 침술로 고쳤다거나,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찾아올 환자의 약을 미리 지어놓고 죽었다는 등 명의 진좌수에 관한 숱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괴뇌깃도이야기」는 당신(堂神)의 원조인 소천국의 열여섯째 아들이자 김녕굴달의 주신인 태자에 관한 것이다. 괴뇌깃도는 어느 날 조천읍에 밭갈이를 나갔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승려가 밥을 좀 달라고 하여 자기 점심밥을 내주었다.
막상 점심을 먹으려 하던 그는 승려가 남긴 밥은 차마 먹을 수 없고 배는 고픈지라 밭 갈던 소를 잡아먹어 버렸다. 그리고나서 쟁기의 손잡이를 자기 배에 대고 밭을 다 갈아놓고 집에 왔다.
그러나 부모는 노발대발하면서 무쇠상자 속에 가두고 서른여덟 개의 자물쇠를 채워 바다에 띄웠다. 무쇠상자는 떠내려가다가 흑산호 가지에 걸렸는데 용왕이 상자를 가져다가 자기 딸들에게 열게 하니 셋째 딸이 열었다.
용왕은 강남천자국을 평정하러 간다는 괴뇌깃도의 말을 듣고 셋째 딸과 혼인을 시켰다. 그러나 괴뇌깃도가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창고가 텅 비게 되어 용왕국이 망할 지경에 이르자 이들 부부를 쫓아내 버렸다.
괴뇌깃도부부는 강남천자국에 가서 변란을 평정해 주고 그 포상으로 탐라국 땅을 한쪽 얻어 돌아왔다. 거구의 장정으로 변모하여 찾아 온 자식을 보고 부모는 무섭고 놀라서 백록담으로 도망가 살았다. 이때 아들이 없었던 김녕의 큰 당한집이 소천국에 가 사정 이야기를 하여 괴뇌깃도를 양자로 삼기로 승낙 받고 한라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입산봉에 자리하고 앉은 괴뇌깃도에게 어느 누구 하나 물 한 모금 대접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화가 난 괴뇌깃도는 조화를 부려 김녕에만 구시월이 되도록 철을 당겨 흉년이 들게 하니, 사람들이 심방을 청해다가 굿을 하고 그에게 어디 좋은 곳에 좌정하면 웃어른으로 모시겠다고 간청하였다. 이에 노여움이 풀린 그가 윗동산 팽나무 밑으로 하여 괴뇌기굴 속으로 들어가 소리엉에 좌정하였다.
그뒤부터 사람들이 괴뇌깃도에게 제를 지내오는데, “제물로는 삼년에 한 번씩 돼지를 잡아 올리되 반드시 100근이 찬 놈으로 하라.”는 지시대로 따르고 있다 하여 ‘돝제’라 불리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종류가 다양하고 양도 풍부하다. 그중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전해지는 것으로는 그 사설로 보아 가장 양이 많고 질도 뛰어난「맷돌노래」·「방아노래」·「해녀노래」를 꼽을 수 있다. 이밖에 「김매는 노래」·「타작노래」·「밭 밟는 노래」·「나무 쪼개는 노래」·「따비질노래」·「꼴 베는 노래」 등의 노동요와 「상여노래」·「달구노래」·「진토굿노래」 등의 의식요가 있다.
이 군 특유의 노동요로는 각 지역의 생업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우선 「멸치 후리는 노래」는 백사장이 넓고 멸치 후리기가 성행했던 지역에서 불리던 것이다. 지금은 구좌읍 동김녕리에서 전형적으로 전승되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갓일을 하면서 부르는「양태노래」·「모자노래」·「탕건노래」·「망건노래」 등은 애월읍 동반부와 조천읍 일대에서 불렸다. 갓일이 본토와 내왕하던 포구인 조천포(朝天浦)와 별도포(別刀浦)에 걸친 지역에서 성행했기 때문이다. 갓일 자체가 아주 사라진 지금은 기능보유자 몇 명에 의해 겨우 그 명맥만 유지되는 실정이다.
제주도 전역에서도 불리지만, 특히 이 지역에서 많이 불리는 민요로는 구좌읍 동김녕리의「해녀노래」, 애월읍 광령리의 「흙덩이 바수는 노래」, 한림읍 협재리의 「뱃노래」, 조천읍 조천리의「맷돌노래」 등이 있다.
이밖에 김맬 때나 유흥시에 두루 부르는「서우젯소리」는 원래 무당이 굿을 할 때 부르던 것이지만, 곡이 빼어나서 널리 불린다. 특히「멸치 후리는 노래」다음에도 불러 멸치후리기가 잘 끝난 것을 축하하고 즐기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여성들의 노래로는「시집살이노래」나「애기 흥그는 소리」 등이 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1. 산업
이 군의 총경지면적은 218.2㎢로 이중 77.9%인 170.1㎢가 밭이며, 20.8%인 45.5㎢가 과수원이다. 논은 1.2%인 2.6㎢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제주도의 곡창지대로서 최근까지도 맥류·잡곡·두류·서류 등과 채소류의 주산지가 되어 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조천읍·애월읍·한림읍을 중심으로 감귤원이 조성되면서 감귤 생산도 현저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근년에 이르러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식량작물의 재배지가 급격히 축소되는 대신에 당근과 양배추를 비롯해 배추·무·수박·참외·토마토·마늘·파 등의 채소류의 재배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라산 남쪽이 감귤 주산지라면 한라산 북쪽의 제주시는 채소류 주산지라 할 정도로 채소류의 생산량이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광활한 용암평원을 바탕으로 예로부터 축산업도 발달하여 제주도내 전목장의 약 반이 이 군에 분포하고 있다. 그중 구좌읍의 송당목장, 조천읍의 제동목장, 한림읍의 이시돌목장 등이 대표적이다. 가축은 주로 육우를 중심으로 하여 한우·젖소·돼지·제주말·닭 등을 사육한다.
수산업 역시 평탄한 대륙붕과 대마해류의 분기점, 황해냉수의 교차 수역이라는 해황(海況)을 가져 다른 시·군에 비해 활발하다. 황해·동중국해·태평양어장과 인접한 관계로 난류성 수산동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회유성 어류가 많아 어장 형성에 유리하므로 제주도 수산업 인구의 약 60%가 종사하고 있다.
공업은 제주도 전체가 극히 취약함을 보이는데, 북제주군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시돌목장에서 생산되는 원모를 원료로 순방모직물과 담요 제조를 하는 한림읍 한림리의 양모공업과 옹포천의 천연지하수를 이용해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소주를 생산하는 한림 옹포리의 한라산소주(옛 한일소주), 그리고 우유와 치즈를 생산하는 한림읍 금악리의 제주낙농협동조합 등은 북제주군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공업이다.
이밖에 한림읍 금릉리와 구좌읍 행원리의 합성수지조선공업, 구좌읍 상도리와 조천읍 조천리·와흘리의 비료공업, 애월읍 어음리의 돈육가공공장, 애월읍 하귀리의 제주합동양조공장 등을 비롯해 제재업, 전분가공업, 제빙업, 플라스틱 제조업, 한천가공업 등이 성업 중이다.
또한, 구좌(행원)농공단지를 중심으로 나전칠기와 낚싯줄 생산, 그리고 식품공업 외에 골판지상자 및 컨테이너 제조공업과 관광토산품공업도 활발하다. 특히 한림읍의 금릉농공단지에서는 전기·기계 공업과 식품가공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어 공업지대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
상업활동은 5일장으로 애월읍 동귀장이 2·7일, 한경면 신창장과, 조천읍 조천장 및 애월읍 애월장이 3·8일, 애월읍 납읍장과 한경면 고산장 및 구좌읍 세화장이 5·10일, 한림읍 한림장이 4·9일에 열린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한림장이다. 이들 장에서는 곡식을 비롯해 한약재 등이 거래되고 있으며, 교통이 좋고 제주도 전체가 1일생활권에 들어 대부분 제주시내를 이용한다.
2. 교통
도로는 간선도로인 해안일주도로로 한라산의 동서 사면을 우회하는 국도와 동부·서부관광도로, 동부·서부축산도로, 제2한라관광도로, 그리고 크고 작은 지방도와 군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3. 관광
이 군은 제주도의 다른 시·군과 달리 다양한 관광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즉, 산악·산림·동굴·초원·해안·섬·온천 등을 고루 갖추어 제주도 유수의 관광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동성이 큰 표선리현무암의 광역적인 분포가 세계 최장의 용암굴인 어음리의 빌레못동굴, 구좌읍 김녕리의 만장굴, 복잡다기한 형태를 지닌 한림읍 협재리의 용암동굴지대(협재굴·쌍룡굴·황금굴·소천굴) 등을 이루어 세계적인 용암동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더욱이 이 지대가 천혜의 관광지로 꼽히는 이유는 백사의 김녕해수욕장과 협재해수욕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은데다 패사(貝砂)의 모래가 옥빛바다를 이루기 때문에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밖에 해수욕장으로는 애월읍의 곽지해수욕장과 조천읍의 함덕해수욕장이 있다. 곽지해수욕장은 제주도 선사시대의 패총이 분포하여 사적관광지가 되기도 하며,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시 가까이에 있어 제주도 내에서는 최대 관광객이 모이는 해수욕장이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는 구좌읍의 월정해수욕장·행원해수욕장·세화해수욕장이 있다.
또한,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 가장 절경을 이루는 한경면 고산리의 차귀도와 우도면의 우도는 낚시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다. 특히, 우도는 우도팔경(牛島八景)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중 해식동(海蝕洞)인 주간명월(晝間明月)과 서빈백사(西濱白沙)가 유명하다. 해수욕장으로도 이용되는 서빈백사에는 세계에서 단 두 곳 밖에 없다는 산호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이밖에 아직 덜 알려졌지만 한림읍 협재 앞바다의 비양도에서는 고동 잡는 관광을 해볼만 하며, 문주란 자생지인 구좌읍 하도리의 토끼섬에서는 한여름에 만발한 문주란꽃을 감상할 수 있고, 제주해협에 그림처럼 펼쳐진 추자군도는 낚시터로 각광받고 있다.
또, 구좌읍 송당리에는 원시의 비자림(榧子林)과 온천·송당목장이 있으며, 애월읍에는 무수천계곡을 비롯해, 납읍리에 천연림 숲으로 유명한 금산공원과 만장굴보다 더 길다고 알려진 미공개의 빌레못동굴, 국제 수준의 제주경마장이 있다.
그리고 한림읍에서 이시돌목장과 명월대, 한경면에서는 요수리 해안의 절부암이 관광명소로 꼽힌다. 산악관광지로는 조천읍에는 분화구인 산굼부리가 있다. 분화구 안에는 특이하게도 420종이나 되는 식물과 각종 포유류·파충류·곤충 등이 분포하고 있어 관광객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조천읍 교래리 일대에 100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돌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구좌읍(舊左邑)
군의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185.82㎢, 인구 1만 5999명(200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세화리이다. 본래 고려시대에는 김녕현촌(金寧縣村)이었으나 조선 초기부터 조천면까지 포함하는 좌면이 되었으며, 1897년에 조천면을 분리하여 구좌면이 되었다가, 1980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영역이 동서로 긴 형태를 보이고, 해안선은 드나듦이 매우 심하여 그 길이가 제주도 내에서 가장 길다. 이로 인한 주민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서부 김녕리에 읍 출장소를 두고 있다.
해안지대가 넓은 지역이지만 감은이오름·성불오름·민오름·당오름·다랑쉬오름·지미봉 등 크고 작은 32개의 측화산들은 오히려 내륙지역의 드넓은 용암평원 위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남쪽의 성산읍과 같이 장축의 한라산 동단에 있기 때문에 하천의 발달이 전무하다.
총경지면적은 6,796㏊로 이중 94.5%인 6,421㏊가 밭이며, 0.5%인 38㏊는 논이다. 과수원은 4.9%인 337㏊이다. 남제주군의 남원읍이 제주 최대의 감귤지대라면 이 읍은 제주 최대의 밭농사지대이다. 주요 작물은 당근이며, 양배추·양파·감자·참깨·고구마 등도 재배된다.
축산업도 일찍부터 발달하여 제주 최초의 관영목장인 송당목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해안선이 비교적 복잡함에도 사빈해안이 발달하여 항구를 기반으로 한 어업보다는 해녀들의 나잠어업이 주가 된다. 종달리는 조선시대에 소금 생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일주도로가 있고 남부를 통과하는 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동김녕리에 용암굴인 만장굴·김녕굴이 분포하여 세계적인 주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이밖에 송당리의 비자림, 하도리 토끼섬의 문주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별방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세화(細花)·월정(月汀)·행원(杏源)·한동(漢東)·평대(坪垈)·송당(松堂)·상도(上道)·하도(下道)·종달(終達)·동김녕(東金寧)·서김녕(西金寧)·동복(東福)·덕천(德泉) 등 13개 리가 있다.
2. 애월읍(厓月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202.15㎢, 인구 2만 6188명(200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애월리이다. 조선 초기 제주목(濟州牧)의 우면에 속했으나 1879년 금성천을 경계로 분리되어 신우면이라 칭하다가 1935년에 애월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0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광령의 무수천과 같이 깊은 계곡을 이루는 곳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다른 읍·면과 같이 넓은 용암평원에 분포하며, 사제비오름·삼신오름·천아오름·다래오름·산새미오름 등 20여 개의 측화산(오름)이 해발고도 600m 이상의 고지에 집중되어 있다.
세계 최장의 용암동굴인 어음리의 빌레못동굴도 이 지역에 있다. 중산간까지 비교적 깊은 토심층을 이루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다.
총경지면적은 5,619㏊로 이 중 68.6%인 3,854㏊는 밭이며, 1.9%인 110㏊는 논이다. 과수원은 29.5%인 1,655㏊이다. 논이 1.9%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지목상이고 실제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밭의 주작물은 양배추·양파·감자·참깨·고구마 순으로 생산량을 보인다. 기업목장보다는 농가 단위로 축산업이 발달해 있다. 애월리에는 최근 대규모 방파제 공사가 계속되어 제주항의 보조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일주도로가 있고 각지로 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선사시대의 패총이 발견된 문화유적은 곽지리에 곽지해수욕장, 고성리에 항파두리항몽유적지, 광령리에 야외종합문화예술관인 신천지미술관이 있다. 이밖에 어음리의 빌레못동굴, 광령리에 지석묘, 곽지리에 패총, 애월리에 성지, 수산리에 곰솔과 성지, 하가리에 연자매 등이 있다.
납읍리 금산공원의 난대림자생지는 자연학습장으로 이용되며, 공원 안에는 민속박물관이 있다. 유수암리에 있는 제주경마장은 조랑말 경주와 각종 위락시설로 관광제주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9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1개교, 전문대학 1개교가 있다.
애월(涯月)·곽지(郭支)·금성(錦城)·봉성(鳳城)·어음(於音)·납읍(納邑)·상가(上加)·하가(下加)·신엄(新嚴)·중엄(中嚴)·구엄(舊嚴)·고내(高內)·용흥(龍興)·상귀(上貴)·고성(古城)·수산(水山)·광령(光令)1·광령2·광령3·하귀(下貴)1·하귀2·소길(召吉)·장전(長田)·유수암(流水巖) 등 24개 리가 있다.
3. 조천읍 朝天邑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150.57㎢, 인구 2만 1070명(200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조천리이다. 조선시대에는 좌면에 속했고 1879년 좌면의 분할로 신좌면이라 칭하다가 1935년 조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5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한라산의 북동 사면에 위치한 관계로 산굼부리와 같이 비고가 28m밖에 안 되는 매우 낮은 오름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라오름·성널오름·괴평이오름·거문오름 등과 같이 구좌읍에 이어지는 비교적 높은 측화산군이 분포하여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교래리를 중심으로 한 중산간지대에는 광활한 용암평원이 펼쳐져 일찍부터 방목장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총경지면적은 4,226㏊로 이중 46.8%인 1,980㏊가 밭이며, 53.2%인 2,246㏊는 과수원이다. 논은 지목상 5㏊가 있으나 실제로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제주시와 인접해 있어 전통적으로 수박·채소류 등의 밭작물을 생산, 공급하는 제주 최대의 근·원교 농업지대가 되고 있다. 과수원은 모두 감귤원이 된다. 도로는 해안일주도로를 비롯해 전 지역으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조천리에 연북정·성지·비석거리와 3·1운동의 만세동산이 있으며, 신촌리에 신촌향사, 교래리에 산굼부리분화구, 선흘리에 동백동산, 북촌리에 선사주거지, 함덕리에 함덕해수욕장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조천(朝天)·신촌(新村)·신흥(新興)·대흘(大屹)·와산(臥山)·와흘(臥屹)·교래(橋來)·함덕(咸德)·북촌(北村)·선흘(善屹) 등 10개 리가 있다.
4. 한림읍 翰林邑
군의 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91.09㎢, 인구 2만 79명(2005년 현재). 읍 소재지는 한림리이다. 본래 제주읍내 오른쪽이 되므로 우면이라 하다가 1935년에 한림면으로 개칭하고 1956년 남서부에 한경면을 신설, 분리시키면서 읍으로 승격하였다. 중산간지대는 구릉의 기복이 심하며 경사지대가 많은 편이나, 해안지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와 비옥한 농토가 많다.
총경지면적은 3,734㏊로 이중 85.7%인 3,203㏊는 밭이며, 0.5%인 17㏊는 논이다. 그리고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바로 받는 관계로 과수원은 13.7%인 514㏊밖에 되지 않는다.
밭의 주작물은 양배추·양파·쪽파 등이며 과수원은 감귤원이 되고 있다. 1960년대 들어 금악리를 중심으로 한 지대에 천주교 신부에 의해 제주 3대 목장의 하나인 이시돌목장이 세워지면서 이 일대는 목축의 중심지가 되었다.
공업은 도내의 읍·면 단위에서 가장 활발하여 제주 유일의 소주생산공장이 있고 순방모직물 생산, 소형선박 제조, 우유와 치즈 생산과 전분 및 식품 가공업이 성행하고 있다. 한림항은 제주 서부지역의 수산 센터로 기능하여 연근해어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근해에서는 명산품인 옥돔이 많이 잡힌다. 도로는 해안일주도로를 비롯해 각지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협재리에 제주 최대의 용암동굴지대인 협재굴·쌍룡굴·황금굴·소철굴이 있고 인근에는 아름다운 협재해수욕장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국내 최대의 식물원과 민속물을 전시한 한림공원이 들어서 있다. 이밖에도 명월리에 명월성지·명월대·명월성터 등의 유적지가 있고, 월령리의 선인장자생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한림(翰林)·귀덕(歸德)·수원(洙原)·대림(大林)·한수(翰洙)·상대(上大)·동명(東明)·명월(明月)·상명(上明)·금악(今嶽)·월림(月林)·옹포(甕浦)·협재(挾才)·금릉(金陵)·월령(月令) 등 15개 리가 있다.
5. 우도면(牛島面)
군의 동쪽에 섬으로 일어진 면. 면적 6.07㎢, 인구 1,796명(200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서광리이다. 조선 초기에 제주목의 일부였고, 1974년에는 좌면에서 분리되어 구좌면에 속해 있다가 1986년에 다시 분리되어 우도면이 되었다.
우도는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 가장 크다. 섬의 형태가 마치 소가 드러누운 것 같다 하여 소섬[牛島]이라 부르지만 물에 뜬 두둑과도 같다고 하여 연평(演坪)이라 하기도 한다. 섬의 동남쪽에 우도봉(132m)이 있어 깎아지른 한 단애가 바다에 면하고 있다.
이 섬은 원래 조정에 진상할 소를 가두어 기르던 무인도였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넓으며 해산물이 풍부하여 1800년대 초에 이주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이 없어 섬의 중앙에 저수지를 만들어 이용하였으나 근래에는 해수를 담수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4.3㎢로 모두 밭이며,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땅콩·보리 등이다. 그러나 이 섬은 ‘해녀의 섬’으로 알려져 있듯이 해초류와 어패류가 풍부하여 수산업의 지위가 높고 일찍부터 일본, 부산 등 외지로 어로활동을 위해 진출한 역사가 있다.
섬의 남동단에 우도봉이 솟아 있고 그 주변은 높고 험한 해식애를 이루어 곳곳에 해식동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지형은 매우 평탄하여 경지율이 무려 71%나 된다. 성산포와 정기도항선이 연결되기 전에 거리가 구좌읍 종달리와 가까웠기 때문에 정기시장도 구좌읍의 장을 이용했다. 지금도 주민의 정서는 성산읍보다 구좌읍과 가깝다.
우도팔경이라 하지만 섬 전체가 모두 관광명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간명월과 서빈백사가 유명하다. 섬 서쪽의 천진리와 북쪽의 상·하고수동에는 백사의 해수욕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중통합학교 1개교가 있다. 서광(西光)·조일(朝日)·천진(天津)·오봉(五逢) 등 4개 리가 있다.
6. 추자면(楸子面)
군의 북쪽에 섬으로 이루어진 면. 면적 7.05㎢, 인구 2,891명(200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서리이다. 본래 전라남도영암군에 속하여 추자도라 불리게 되었다. 1895년에는 전라남도완도군에 편입되었다가 1910년 제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화산섬인 제주 본섬과 달리 육도(陸島)가 되어 지형경관이 한반도와 비슷하다. 또한, 근대식 기선이 출현하기 전에는 제주 본섬과 해운이 불편하여 전라도와 주로 교류했기 때문에 언어 등의 문화가 전라도와 흡사하다. 그러나 근래에 주민의 제주 본섬에 대한 귀속성이 강해져 제주문화에 많이 동화되고 있다.
중심을 이루는 상추자와 하추자는 비교적 크나 나머지 섬은 모두 1㎢ 미만으로 협소하다. 총경지면적은 169.5㏊로 논은 2.7㏊에 불과하고 나머지 모두가 밭이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고구마·콩 등이다. 그러나 주산업은 수산업으로 과거에는 파시가 열리기도 했으며, 특히 멸치잡이로 유명하다. 교통은 지역 내를 운행하는 버스와 목포∼제주간을 운행하는 여객선이 있다.
문화유적은 대서리의 최영장군사당, 영흥리의 추자처사각이 있으며, 모든 섬 주위가 낚시터가 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분교 1개),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대서(大西)·영흥(永興)·묵(默)·신양(新陽)1·신양2·예초(禮草) 등 6개 리가 있다.
7. 한경면(翰京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9.09㎢, 인구 8,862명(200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창리이다. 본래 제주도 구우면 지역으로 1935년에 한림면이라 개칭되었고 1956년 한립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분리되어 서부지역에 한경면이 신설되었다.
장축을 이루는 한라산의 서쪽 끝에 위치하여 광활한 용암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지역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m 이하의 평탄지로 제주 최대의 한경평원이 형성되어 있다. 화산회토가 대부분인 제주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한경평원의 토양은 점토질로 이루어져 옛 부터 옹기그릇을 생산하기도 했고, 논농사가 행해지기도 한다. 수월봉은 성산이나 단산과 같이 해안에 면한 측화산으로서 퇴적층이 잘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총경지면적은 4,149㏊로 이중 86.6%인 3,594㏊가 밭이고, 2.8%인 116㏊는 논이며, 나머지 10.6%는 과수원이다. 제주도에서는 구좌읍 다음으로 밭의 면적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콩·감자이지만 고구마도 약간 재배된다. 논의 면적이 2.8%가 되는 것은 제주도 내의 다른 읍·면과 비교할 때 현저히 넓은 면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산간취락에서는 목축업도 활발하여 2개의 공동목장과 대규모 기업목장이 발달해 있다. 도로는 면의 남북으로 국도가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고산리의 차귀성지가 있다. 명승지로는 용수리의 절부암·황새도래지·수월봉·당오름, 그리고 제주민속음악박물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신창(新昌)·두모(頭毛)·금등(今藤)·조수(造水)·낙천(樂泉)·청수(淸水)·저지(楮旨)·판포(板浦)·한원(漢原)·용당(龍塘)·고산(高山)·용수(龍水)·산양(山陽) 등 13개 리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향약단체의 임원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오홍석|손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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