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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民謠)

구비문학개념용어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전해지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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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민요
분야
구비문학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전해지는 노래.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특정 개인의 창작이거나 아니거나 창작자가 문제되지 않는다. 악보에 기재되거나 글로 쓰이지 않고 구전(口傳)된다. 엄격한 수련을 거치지 않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악곡이나 사설이 지역에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노래 부를 때의 즉흥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민요는 이런 특징을 지니기에 민중의 소리이고,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평가된다.
민요는 민속이고, 음악이고 문학이다. 민속으로서의 민요는 구비전승(口碑傳承)의 하나이되, 생업·세시풍속·놀이 등을 기능으로 하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집단적인 행위를 통하여 불려지는 기회가 많은 점이 구비전승의 다른 영역과 다르다.
음악으로서의 민요는 일반 민중이 즐기는 민속음악에 속하는 창악(唱樂)이되, 전문적인 수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에서 판소리·무가·시조·가사 등과 구별된다. 문학으로서의 민요는 구비문학의 한 영역이며 일정한 율격을 지닌 단형시라는 점이 설화·속담·수수께끼 등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징이다. 민요는 이러한 민속·음악·문학의 복합체로 존재할 따름이지, 그 세 측면이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변천과 구실
민요는 인류가 집단생활의 감정을 공동으로 표현할 때부터 생겨났다.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같이 움직이고, 수고를 덜고, 기쁨을 나누고, 성과를 기대하는 노래가 일찍부터 필요하였다. 원시인일수록 노래 부르고, 춤추는 일이 많았다. 이런 전통은 역사가 시작되고 국가가 생긴 뒤에도 오랫동안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부여·고구려·삼한 등에서 국중대회(國中大會)를 하면서 남녀가 무리를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 하고, 농사를 시작하고 끝낼 때도 그런 행사를 벌였다는 데서 민요가 큰 구실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고구려·백제·신라가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예악 사상(禮樂思想)에 따라 나라의 공식적인 음악 문화를 이룩하자 민요의 위치가 달라졌다.
민요 중에서 일부는 공식적인 기능을 가진 궁중 악곡으로 채택되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민간에서 계속 전승되는 노래로 남았다. 앞의 것의 예로 고구려의 「내원성 來遠城」·「연양 延陽」, 백제의 「선운산 禪雲山」·「정읍 井邑」, 그리고 신라의 「도솔가 兜率歌」·「회소곡 會蘇曲」 및 『삼국사기』 악지(樂志)에서 열거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어떤 내용인지 알기 어렵고, 「정읍」만은 후대까지 전승된 사설이 국문으로 표기되었다. 민간에서 전승되는 순수한 민요의 모습은 「풍요 風謠」 같은 향가를 통하여 짐작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오면서 상층에서는 중국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문학에서는 한시(漢詩)를, 음악에서는 당악(唐樂)을 정착시키고, 다시 아악(雅樂)을 들여오자 상하층 문화의 간격이 더 벌어지고 민요가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제한되었다.
그런데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귀족 문화의 고답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상층의 이념이 재건되지 않은 기간 동안 민요가 궁중 악곡으로 대량 들어가 속악정재(俗樂呈才)에서 불려지는 속악가사(俗樂歌詞)를 이루었으니, 「청산별곡 靑山別曲」·「서경별곡 西京別曲」·「가시리」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런 자료는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다듬어진 면이 있기는 하지만, 곡조와 사설 양면에서 민요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조선 왕조는 성리학을 지배적인 이념으로 삼아 전대 문화를 정리하면서, 속악가사의 곡조는 계속 이용하면서 사설은 민요와는 거리가 멀게 바꾸었다. 이와 함께, 아악을 가다듬어 예악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나라의 위엄을 상징하는 시가문학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민요의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하락하였다 하겠으나, 민심의 동향을 알고 교화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하여서 민요를 수집하여 참고하였기에 그것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가운데 정치적 변화의 조짐을 알리는 참요(讖謠)가 있다고 믿어 기록하여 두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문화구조가 크게 달라지면서 민요가 적극적인 구실을 하였다. 민중의식의 각성이 민요를 통하여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속악이 일어나고, 국문시가는 물론 한시 또한 민요에 접근하고 민요에서 소재와 표현을 다수 차용하였다.
원래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과 더불어 전승되던 민요가 본고장을 떠나 널리 전파되고, 고정된 기능에서 이탈하여 노래 그 자체로 불려지게 된 것도 커다란 변화이다. 교통이 열리고 사람의 이동이 잦게 되자, 서울의 「아리랑」을 전국에서 부르게 되었으며, 함경도의 「어랑타령」이 남쪽 지방에도 알려졌다. 무가였던 「노랫가락」, 노동요였던 「뱃노래」가 놀면서 부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를 촉진시키는 데 전문적인 놀이패가 큰 구실을 하였다. 「산타령」은 선소리패라는 놀이패가 맡아서 부르는 흥미로운 공연물로 발달하였다. 전문적인 놀이패가 음악적인 세련성과 문학적 수식을 보탠 노래는 잡가(雜歌)라고 지칭되었으며, 민요의 범위를 벗어났다.
서울 지방의 십이잡가(十二雜歌)를 통하여 독자적인 성격을 확립한 잡가는 종목이 계속 늘어나고 널리 불려졌으며, 여러 차례 출판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자 ‘노래’와 ‘소리’를 구별하여야만 되었다. 정악인 가곡(歌曲)을 잡다한 공연물과 구별하고자 하는 쪽에서는 가곡만 노래이고, 그밖의 것들은 소리라면서 격이 다르다고 하였다.
이런 구분에 의하면 민요는 모두 소리이다. 민요 자체는 원래 노래라고도 하고 소리라고도 하였는데, 새로운 종목이 다수 등장하자 전통적인 민요를 그대로 부르고 있는 쪽에서는 자기네 것은 ‘옛날 노래’라 하고, 새로운 종목은 무엇이든 ‘중년 소리’라고 일컬었다.
양쪽의 구분에서 모두 소리라는 것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전환기에 다양하고 왕성하게 창작되었다. 「경복궁타령」·「도라지타령」·「노들강변」 같은 것이 새로 등장하였거나 누가 지은 신민요(新民謠)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민요는 민족의 정서를 집약하고 일제에 대한 항거의 의지를 나타내는 구실을 맡았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共同山) 간다.’는 세태를 풍자하고, ‘쓰라린 가슴을 움켜 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는 결의를 나타내었다.
이처럼 적극적인 항거를 할 수 없었던 민요의 표현과 정서를 받아들여 민요시를 이룩하자는 시도가 현대시에서 거듭되었으나, 이런 경지에까지는 이를 수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이식된 상업주의의 산물인 유행가 또는 대중가요가 보급되고, 또 한편으로는 농촌 사회의 전통적 생활 방식마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민요는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요를 그 자체로 보존하면서 음악·문학 양면에서 새로운 창조의 풍부한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는 과제는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적 기능과 가창 방식
민요의 기본적인 형태는 생활에서 일정한 기능을 하는 것이고, 그 가운데 노동요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노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행동 통일을 할 수 있고, 흥겨워서 힘이 덜 들기 때문에 노동요는 전통적인 노동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구비되어 있었고, 노동의 방식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려졌다.
노동요는 최초의 민요이고, 다른 여러 가지 민요를 파생시킨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노동의 종류와 방식이 달라지고 생활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어서 노동요 전승이 위기를 맞이하였다.
노동요가 제대로 불려진 때는 전국 어느 마을, 어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 나름대로의 민요를 즐겼는데, 노동요 전승의 위기가 도래하자 국민 대다수가 노래 창조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고, 음악이나 문학 교육이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였다.
노동요는 노동의 종류에 따라서 농업노동요(農業勞動謠), 어업노동요(漁業勞動謠),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부르는 잡역노동요(雜役勞動謠)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는 대부분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면서 부르는 집단노동요(集團勞動謠)이다.
잡역노동요는 종류가 무척 다양한데, 토목·운반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것은 집단노동요이고, 수공업이나 집안일을 하면서 부르는 것은 개인노동요(個人勞動謠)인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하는 일은 집단노동요를, 여자들이 하는 일은 개인노동요를 필요로 하는 것이 많다.
격렬하고 힘든 동작을 일제히 함께 하면서 부르는 집단노동요는 악곡이나 사설이 단순하게 반복되고, 이와는 반대로 느린 동작을 혼자서 하면서 부르는 개인노동요는 표현이 다채롭고 내용이 풍부하다.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대표적인 노동요를 들면 농업노동요인 「보리타작소리」·「모내기소리」·「논매기소리」가 있다. 이 가운데 「보리타작소리」와 「논매기소리」는 한사람이 메기고, 여럿이서 받으며, 메기는 사람은 의미 있는 사설을, 받는 사람들은 의미 없는 여음을 담당하는 선후창 방식(先後唱方式)을 택한다.
「모내기소리」는 일하는 사람들이 두 패로 나누어서 의미있는 사설을 한 줄씩 부르는 교환창(交換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차이는 노동에서의 동작이 서로 다른 데 연유한다.
같은 선후창을 택하지만 격렬한 동작을 일제히 하면서 부르는 「보리타작소리」는 사설이 짧고 여음도 한 마디만이다. 사설과 여음이 더 길게 늘어지는 「논매기소리」는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변이가 있다. 「모내기소리」는 어디서나 서정적인 표현을 묘미있게 지니고 있다.
선후창과 교환창은 그 밖의 다른 노동요에서도 보이는 민요 가창 방식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여자들이 맷돌질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교환창으로 이루어진다.
「모내기소리」는 주고받는 것으로 사설 하나가 끝나는데, 「맷돌소리」의 경우 사설이 연속되는 점은 다르다. 부르는 사람들이 역할 분담을 하지 않고 제창(齊唱)을 하거나 독창(獨唱)을 하는 것은 노동에 따르는 동작이 완만할 때 채택되는 가창 방식이다.
여자들의 잡역노동요이자 개인노동요의 대표적인 예인 「길쌈노래」가 거기 해당한다. 길쌈은 여럿이 모여 함께 하더라도 각자 자기 일이니 노래 부르는 배역을 정할 수 없으며, 지루하게 계속되기 때문에 길게 이어지는 사설을 필요로 한다. 여자들은 그런 기회에 마음에 간직하여 둔 사연을 토로하므로 「길쌈노래」는 구성지거나 처절하다.
노동요의 종류는 지역의 특성이나 생업의 양상에 따라 다르게 마련인데, 크게 나누면 평야형·산간형·해안형이 있다. 평야형은 「논매기소리」가 논매기를 세 번할 때마다 달라지는 점이 특이하다.
산간형은 밭을 갈고, 밟고 하면서 부르는 노래,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면서 부르는 「초부가 樵夫歌」 같은 것들을 갖추고 있다. 해안형에는 어업노동요가 있으며, 노를 젓고, 그물을 끌어올리고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그 주종을 이룬다.
그런데 제주도는 산간형과 해안형을 아우른 고장이어서 특이하고, 다른 데는 없는 「해녀노래」가 있으며, 갓을 만드는 일을 많이 하기에 「양태노래」가 발달되어 있다.
의식요는 사람의 일생에 따르는 통과 의례(通過儀禮)와 일년 동안의 절후에 따르는 세시 의례(歲時儀禮)를 거행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통과 의례는 여러 단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혼인을 할 때 가마꾼들이 부르는 노래, 환갑잔치에서 부르는 노래도 통과 의례 의식요라 할 수 있으나, 장례 절차에 따르는 「상엿소리」·「덜구소리」만 다른 민요와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갖추고 널리 전승된다.
이들은 상여를 메고, 무덤을 다지는 일을 하면서 부르기에 노동요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망자(亡者)의 안장(安葬)을 기원하고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을 더욱 중요한 기능으로 한다.
세시의례의 의식요로서는 정월 초순에 농악대가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를 할 때 부르는 것이 가장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상엿소리」·「덜구소리」·「지신밟기소리」는 모두 선후창으로 부르고, 메기는 사람이 의식 진행의 주역 노릇을 한다.
일정한 기능이 있는 민요의 또 한가지 부류는 유희요(遊戱謠)이다. 유희요는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인데,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아동유희요·남성유희요·여성유희요로 나눌 수 있다. 아동들이 하는 놀이는 대부분 노래를 필요로 하며, 동요라고 일컫는 것은 대부분 아동유희요이다.
어깨동무·대문놀이·잠자리잡기 등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그 좋은 예이다. 그런데 성인 남성들의 놀이는 노래를 필요로 하는 것이 흔하지 않다. 술 마시고 춤추면서 부르는 노래는 특별한 절차가 없고 고정된 종목을 갖추지 않으니 유희요라 하기 어렵다.
여성유희요는 강강수월래·놋다리밟기 등을 하면서 부르는 것이 있어 남성유희요보다 형식이 구비되고 내용이 풍부하다. 강강수월래, 놋다리밟기는 그 비슷한 것이 전국 각지에 여러 가지 있는데, 세시 의례이면서 여성의 집단 유희이다. 노래는 선후창으로 부르면서 진행된다.
일정한 기능이 없는 민요는 놀면서 부르거나 노래 자체가 흥겨워 부르는 것이다. 위에서 든 기능요(機能謠)와 구별하기 위하여서 비기능요(非機能謠)라고 일컫는다. 비기능요는 기능요가 일시적으로 전용된 것이거나 기능요에서 파생된 것이 대부분이다.
어업노동요에서 놀면서 부르는 「뱃노래」가, 「길쌈노래」에서 노래 그 자체로 독립된 「베틀노래」가 생겨났다. 본고장에서는 기능요였던 것이 다른 데로 전파되면서 비기능요로 바뀌기도 한다. 전문적인 소리패가 가담하여서 악곡이나 사설을 가다듬을 때도 비기능요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전라도지방의 「논매기소리」가 판소리 풍의 「농부가」로 바뀐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고대부터 궁중악곡으로 들어간 민요, 근대에 잡가가 된 민요는 모두 이런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고정된 기능을 지탱하는 생활 방식이 변화를 겪어, 전통적인 민요가 비기능요로 전승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악곡의 지역적 특성
민요의 악곡은 이상에서 말한 기능상의 구분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크게 보면 지역마다의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민요의 악곡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을 민요권(民謠圈)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민요권은 방언권(方言圈)과 대체로 일치한다.
앞으로 자세한 연구가 있어야 하지만, 경기민요(京畿民謠)·남도민요(南道民謠)가 민요권 구분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 밖에 강원도·경상도·제주도 민요도 각기 독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경기민요는 충청도 일부에서까지 불려지는데,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대개 5음 음계의 평조(平調) 선법을 가지고 있으며, 장3도·단3도의 진행이 많고, 세마치나 굿거리장단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경쾌하게 들린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경기민요는 서울을 포함하는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에서 자라났다는 입지 조건에 힙입어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지방의 민요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선소리패 등의 놀이패가 경기민요의 몇 가지 종목을 도시의 수용층을 위한 흥행적인 공연물로 발전시켰다.
「산타령」·「방아타령」·「한강수타령」·「경복궁타령」이 그런 예이다. 「아리랑」·「노랫가락」·「창부타령」 등은 흥행적인 공연물이 아닌데도 전국에 널리 전파되었다.
남도민요라고 하는 전라도의 민요는 이와 여러 모로 대조적인 특징을 지닌다. 우선 발성법만 보아도, 굵고 극적(劇的)인 소리를 목을 누르고 꺾어 내는 점이 독특하여 다른 지방의 민요와 쉽게 구별된다. 계면조(界面調)를 주로 사용하여 비장한 느낌을 돋운다.
장단은 중모리·중중모리인 것이 흔하고, 드물게는 진양조나 자진모리도 있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이런 전통을 이어서 판소리가 전라도 지방에서 생겨나고 발전하였다. 「농부가」는 원래 민요였던 것이 판소리에 삽입되고 다시 다듬어졌다.
「새타령」 또한 판소리의 삽입가요가 되어 널리 알려졌다. 「진도아리랑」은 멀리 진도(珍島)의 민요이지만 전라도 민요 특유의 음악성을 잘 갖추어 서울의 「아리랑」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였다. 전라도 민요는 흥행적인 공연물이 아니라도 음악적 표현의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서도민요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민요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그곳 민요는 하늘거리는 콧노래처럼 들리고, 어딘지 모르게 한탄스러운 느낌이 맺혀 있어 특이하다. 그런 느낌이 복받쳐 올라 울음 울듯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듯 내질렀다가 입 안으로 끌어들여 앓는 것처럼 웅얼거리기도 한다.
이런 특징은 서도민요를 대표할 수 있는 「수심가 愁心歌」에서 잘 나타난다. 「수심가」는 일정한 장단이 없고, 그 밖의 다른 노래는 도들이·세마치·굿거리 등의 장단으로 불려진다. 한탄스러운 느낌은 함경도 민요에서도 보이고, 강원도 민요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강원도 민요에는 구슬프면서 염불하듯이 이어지는 곡조가 많은데, 그런 것을 메나리조(調)라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민요의 대표적인 예인 「정선아라리」는 일정한 장단이 거의 없이 시작되어서 감정을 점점 고조시킨다.
자유로운 변이를 통하여 긴장과 이완을 교체시키는 우수한 표현법을 사용한다. 강원도 민요에는 중모리나 엇모리 같은 규칙적인 장단을 사용하는 것도 있다. 강원도와 인접한 경상도 지역에는 강원도 민요의 영향이 짙으며, 메나리조도 발견된다.
경상도 민요의 고유한 특징은 빠르고 힘찬 장단을 사용하는 데 있고, 음악적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제주도 민요는 한탄스러운 느낌을 푸념하듯이 나타내어서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요 사설의 문학적 성격
민요의 사설은 한국 시가 형식의 기본형을 두루 갖추고 있다. 대구(對句) 또는 문답으로 된 두 줄 형식이 있고, 몇 줄이 한 연(聯)을 이룬 다음 여음이 삽입되기도 하고, 여러 줄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있다.
이 세 가지 기본형은 각기, 이른바 사구체(四句體) 향가(鄕歌), 여음이 삽입된 고려가요(高麗歌謠), 가사(歌辭)의 형식과 같다. 민요에 근거를 두고 그런 시가 형식이 생겨났을 것이다. 율격을 살피면, 민요에는 2음보·3음보·4음보가 흔하고, 음보 수를 필요에 따라서 줄이거나 늘이는 변이형도 있다.
이 점 또한 시가문학의 기저로 활용되어 왔다. 그런가 하면, 민요에는 몇 줄인지 확실하지 않고 음보 구성에도 규칙성이 없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도 있어, 사설시조(辭說時調)와 상통하고, 자유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민요는 대부분 서정시이며, 서정시에 적합한 비유·상징 등의 수사법으로 소박하면서도 묘미가 있는 심상(心像)을 갖춘 것이 적지 않다. 일하는 사람의 신선하고 보람찬 의식을 나타내는 한편, 삶의 고달픔과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가 한 작품에 복합되어 긴장된 구조를 이룩하기도 한다. 지배층의 수탈에 맞서고 외적의 침입에 항거하는 의지를 비장하게 또는 풍자적인 수법으로 표출한 민요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민요는 모두 다 서정민요가 아니며, 교술민요(敎述民謠)·서사민요(敍事民謠)·희곡민요(戱曲民謠)라고 하는 것도 있다. 율문으로 된 문학 장르의 모든 뿌리가 민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그 절차를 열거하고, 사물에 대한 관찰을 서술하는 민요는 서정적인 맛은 적으나 그 나름대로 긴요한 구실을 하는데, 이런 것을 교술민요라고 할 수 있다.
덕담(德談)을 늘어놓는 민요도 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동요에는 문답으로 전개되는 것이 있어, 희곡민요라는 용어를 써서 그 특징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예는 흔하지 않다.
서사민요는 이야기를 갖춘 민요이며 비교적 장편에 속한다. 주로 여자들이 길쌈하면서 지루함을 이기기 위하여 부르며,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를 비극적으로 표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조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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