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죽도는 손죽열도의 중심 섬이며, 섬의 모양은 삼각형이다. 서쪽 해안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가 곳곳에 분포하며, 해안은 암석해안이 많으나 섬 북쪽에 형성된 만 일대에는 주34 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지질은 대부분 주3 주4의 유문암질 응회암류와 주5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 위치한 깃대봉(242m)을 비롯하여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가 분포하나 서쪽 해안 일대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해안은 암석 주6이 많으나 섬 북쪽에 형성된 만(灣) 일대에는 사빈 주7이 발달해 있다. 해안은 북쪽에 크게 만입된 부분이 있을 뿐 드나듦이 비교적 단조롭다.
손죽도 주8은 두 곳에서 발견되었다. 손죽도 조개더미Ⅰ은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 민가의 뒤편에 있으며, 유적은 주9를 따라 오르다 보면 소로의 단면상에 주10들이 박혀 있다.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주11 등이 수습되었다. 손죽도 조개더미Ⅱ는 손죽도 조개더미Ⅰ에서 동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약 200m 정도 가면 나오는 마을에 위치해 있다. 유적은 이 마을의 첫 번째 민가 담장에 패각들이 박혀 있다. 이 유적에서는 빗살문토기 조각과 골각기 등이 수습되었다.
손죽도의 주요 식생은 섬의 중심으로부터 많은 지역이 곰솔 군락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상록활엽수림인 동백나무 군락, 구실잣밤나무 군락 등이 출현하고 있으며, 해안능선을 따라 낙엽활엽수림인 소사나무 군락이 서식하고 있다. 섬의 일부지역에는 농경지와 민가가 있고, 주12에는 띠 군락, 억새 군락, 칡 군락, 망초 군락, 환삼덩굴, 억새 군락, 주13 군락이 출현하였다. 손죽도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은 직박구리, 동박새, 휘파람새, 주14, 주15, 칼새, 괭이갈매기, 주16, 주17, 가마우지, 매 등이다.
거문도 인근은 주18의 남단에 위치한 섬으로 연중 주19의 영향으로 기온이 온화하고 강우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온대 및 난대성 식생의 분포가 넓게 나타나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13.9℃로서 전국 평균보다 높고 관측기간 중 최고 기온은 36.4℃ 최저기온은 –12.6℃를 기록하였다. 기온의 연교차는 24.3℃로 내륙 연평균기온 25.9℃보다 작아 해양성 기후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강수량은 연평균 1,413.3mm로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 1,200mm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주20이라 해마다 태풍과 장마철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1600년대 제주에서 고씨, 부씨 등이 최초로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나, 왜구들의 주21이 심하여 육지로 피신하였다. 이후 이씨, 박씨, 김씨 등이 다시 입도하여 살았다.
원래 흥양현(興陽縣)에 속한 섬인데 1896년 지방제도 개편 때 돌산군(突山郡)에 편입되어, 손죽도와 초도(草島)는 상도(上島)라 부르고 거문도(巨文島)는 하도(下島)라고 하여 주22이 다스렸다. 1908년에 상 · 하도를 합하여 삼산면이라 칭하고 집강 대신 면장을 두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돌산군에서 여수군으로 이속되었다. 1949년에 여천군 삼산면이 되었고 1998년에 통합 여수시 주23 주24가 되었다.
2023년 12월말 기준으로 인구는 197명(남 111명, 여 8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129세대이다. 취락은 북쪽 해안의 만에 위치한 주25을 중심으로 한 주26에 집중 분포한다.
토지 이용 현황은 논 0.02㎢, 밭 0.58㎢, 임야 2.16㎢이다. 손죽도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농산물로는 고구마 · 마늘 · 옥수수 · 보리 · 양파 · 콩 등이 생산되며, 근해에서는 문어 · 삼치 · 방어 · 도미 등이 잡히고, 자연산 톳의 채취와 미역 · 김 등의 양식도 이루어진다.
제4차 섬발전종합계획(2018년~2027년)의 개발대상섬에 해당되고,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상 특수상황지역에 해당된다. 현재 전기는 한전에서 공급되며, 수도는 간이상수도를 통해 공급된다. 교통은 여수항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도초등학교 손죽분교장이 있고, 공공시설로는 손죽보건진료소와 우편취급국이 있다.
여수 지역에서는 봄에 여성들이 화전을 부쳐 먹으며 노는 화전놀이를 하는데, 주로 삼월 주27에 이뤄진다. 음력 3월 3일을 삼짇날 혹은 상사일(上巳日), 주28이라고 한다. 이 날은 강남으로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진달래가 만발하며 나비가 날아들기 때문에 나쁜 기운을 버리는 의미로 산이나 들로 나가 ‘제비맞이’, ‘화전즐기기’ 등으로 하루를 즐긴다. 여성들은 산에 만발한 진달래꽃을 따서 전을 지지며 음식을 장만했고, 이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돈다고 하여 들에 나가 음식을 준비하면서 주29에 흐르는 물로 머리를 감기도 하였다. 남성들도 낭만적인 화전놀이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정해진 시기가 없는 봄맞이 풍류의 일부였으며, 참여하는 사람도 가까운 벗들로 제한되어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구별된다. 또, 남성들의 화전놀이는 여가 활동으로 볼 수 있으나 여성들에게는 일 년에 몇 차례밖에 없는 공식적이고 집단적인 나들이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손죽도 지지미재에서는 춘삼월 봄꽃들이 필 때, 찹쌀가루를 버무린 뒤에 진달래 꽃잎을 올리고 달구어진 쇠판에 기름을 둘러 지진 음식, 즉 전을 만들어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던 봄맞이 놀이가 해마다 열렸다. 남자들이 풍물판을 벌리면 마을의 여성들이 산등성에 모여서 즐거운 주30를 하였다. 화전놀이 날이 정해지면 중노년기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반별로 곡식을 거두어 술을 담그고, 젊은 여성들이 집집마다 맛있는 점심을 준비하여 주31에 담아 이고 화전놀이 터로 올라갔다. 한때는 삼청목을 지나서 몰따죽(마제봉, 馬製奉)에서 화전놀이가 일시적으로 있었으나, 사람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여 다시 지지미재로 옮겨서 화전놀이가 이뤄졌다.
마을 공동 주32의 이름은 ‘숭모제(崇慕祭)’이나, 마을 사람들은 이대원 장군의 당제를 지낸다고 하며, 제의 장소는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충렬사(忠烈祠)이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으나, 1983년 2차로 복원하였고, 1987년 4차 주33 현재 건물에 이르고 있다. 충렬사 내부에는 이대원 장군 영정과 ‘병조판서 이공대원 장군 신위(兵曹判書李公大源將軍神位)’가 모셔져 있으며, 교지가 있다. 제사는 음력 3월 3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지낸다. 예전에는 음력 3월 3일과 11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숭모제를 지내고, 섣달 그믐날 당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3월 1회로 통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