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는 경상북도 남부 중앙 지역에 위치한 시로, 대구광역시의 일상 생활권에 속하여 대도시 근교 주변 지역 성격이 나타나는 지역이다. 경부선 · 대구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국도 4호선과 국도 25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13개 대학에 약 13만 명의 대학생이 재학 중인 교육도시이자 경산산업단지 등에 1,400여 개 중소 기업체가 입주해 있는 산업도시이기도 하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경산 갓바위소원성취축제’가 유명하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11.84㎢이고, 인구는 28만 4883명이다.
경상북도 남부 중앙 지역인 대구분지 동남부에 자리한 경산시는, 동쪽과 남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 청도군, 서쪽과 북서쪽은 대구광역시, 북동쪽은 경상북도 영천시와 접한다. 경부선 · 대구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국도 4호선[산업도로]과 국도 25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경상북도 포항시 · 경주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등 남동쪽 지역에서 대구광역시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대구광역시와 인접하여 교육 · 문화 · 산업 · 주거가 어우러진 도 · 농 복합 기능 도시의 특징을 보이며, 대구광역시의 위성도시적 성격도 강하게 나타난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11.84㎢이고, 인구는 28만 4883명이다. 행정구역은 3개 읍[하양읍 · 진량읍 · 압량읍], 5개 면[와촌면 · 자인면 · 용성면 · 남산면 · 남천면], 7개 행정동[중앙동 · 동부동 · 서부1동 · 서부2동 · 남부동 · 북부동 · 중방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산시청은 중방동에 있다.
경산시는 대구분지의 동남부에 자리해 남쪽과 북쪽은 산지를 이루고 중앙부에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북부 산지는 팔공산(八公山: 1,192.3m)의 연맥에 해당하고, 남부 산지는 태백산맥이 서쪽으로 갈라지면서 형성된 지형이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수성암층인 경상층(慶尙層)을 관입한 반암(班岩) · 응회암(凝灰岩) 등의 화성암으로 형성되었고, 토양은 황갈색 삼림토에 속한다.
동 · 서 · 남 3면은 금박산(金箔山: 432m) · 구룡산(九龍山: 675m) · 선의산[786m] · 용각산(龍角山: 693m) · 상원산(上院山: 670m) · 동학산(東鶴山: 603m) · 병풍산(屛風山: 576m) · 금성산(金城山: 433m)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는 도천산(到天山: 260m)이, 하양읍 쪽으로는 소리산[342m] · 무학산(舞鶴山: 593m) 등이 있다.
하천은 남천면 용각산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드는 남천과, 용성면 구룡산에서 발원하여 시의 도심에서 금호강에 합류하는 오목천(烏木川, 五木川) 등이 있다.
남부 산지의 북쪽인 시 중앙부는 금호평야(琴湖平野)로 넓게 트여 있는데, 이는 남천(南川)의 주1에 의해 형성된 남천분지와 오목천과 관란천(觀瀾川)의 개석에 의해 형성된 용성분지 · 남산분지 지역으로 구분된다. 금호평야는 금호강과 그 지류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되어 경상북도 제일의 평야지대를 이루며, 토양이 비옥하고 좋은 수리 시설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하천 양안의 자연 제방을 따라 사과가 많이 재배되는데, 한때는 대구사과의 주요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내륙분지 지역이라 한서의 차가 큰 내륙성기후를 띠는데, 2023년 기준 연평균기온은 14.4℃, 1월 평균기온은 0.7℃, 8월 평균기온은 26.6℃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249.9㎜다.
초기국가시대 경산 지역은 압독국(押督國)[압량소국(押梁小國)]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압량 또는 압독소국은 주2 24국 중 하나로 102년(파사왕 23) 신라에 합병되었다. 이후에도 일정 기간 독자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5세기 말 이후 군현제가 실시될 때 군으로 편제되었고, 642년(선덕여왕 11) 이전에 압독주(押督州)[압량주라고도 함]가 설치되어 있었다. 7세기 중엽 김유신(金庾信: 595673)과 김인문(金仁問: 629694) 등이 이곳의 군주(軍主) 또는 총관(摠管)으로 있으면서 백제군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758년(경덕왕 17)에 다시 장산군(獐山郡)으로 고쳐 장산군 읍내면이라고 불렀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장산현(章山縣)으로 하고 경주부(慶州府)에 속하였다. 충선왕(忠宣王: 12751325) 때 왕의 이름[장(璋)]을 피하여 경산으로 바꾸었고, 충숙왕(忠肅王: 12941339) 때에는 국사 일연(一然)의 고향이라 하여 현령관(縣令官)으로 읍격이 높아졌다. 공양왕(恭讓王: 1345~1394) 때에는 왕비의 출신지라 하여 장산군(章山郡)으로 승격하였다.
현재의 진량 지역은 신라의 마진량현(麻珍良縣)에서 여량현(餘糧縣)으로 개명되어 장산군에 속해 있다가 훗날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강등되어 경주부에 속하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인 1395년(태조 4)에 다시 경산현(慶山縣)으로 하였다. 지방제도가 정비되면서 경산현에는 현령, 하양현에는 현감을 두었고, 자인현은 경주부의 속현이 되었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 따르면, 관개시설인 주3은 경산현이 18개, 하양현이 15개, 자인현이 27개였다. 제언은 보(洑)와 함께 조선 후기에도 계속 증가한 점이 확인되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벼농사가 매우 발달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크게 황폐해졌고, 1601년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경산현과 하양현은 일시적으로 대구부에 속하였다가 1607년(선조 40) 다시 복현이 되었고, 1637년(인조 15)에는 자인현도 복현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의 개정에 따라 대구부 소관의 경산군, 하양군, 자인군으로 승격하였고, 다음 해에는 경산군, 하양군, 자인군이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1914년 부 · 군 폐합 때 자인군 · 하양군의 두 군과 신령군 · 영천군 · 청도군의 일부가 경산군에 병합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에 따라 경산면이 경산읍으로 승격하였고, 1973년 7월 1일에는 안심면과 하양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1년 7월 1일 안심읍과 고산면이 직할시로 승격한 대구[현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으며, 1987년 1월 1일에는 경산읍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대통령령 제12007호에 따라 압양면 11개 동[면적: 21.3㎢]이 경산읍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따라 경산읍이 경산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시 설치에 따라 경산시와 경산군이 합쳐서 지금의 경산시가 되었다.
2025년 5월 기준 행정구역은 3개 읍[하양읍 · 진량읍 · 압량읍], 5개 면[와촌면 · 자인면 · 용성면 · 남산면 · 남천면], 7개 행정동[중앙동 · 동부동 · 서부1동 · 서부2동 · 남부동 · 북부동 · 중방동]으로 되어 있다.
경산시는 초기국가시대에는 압독국[압량소국]의 터전이었으며, 원효(元曉: 617686), 설총(薛聰: 655?), 일연(一然: 1206~1289)과 같은 성현이 출생한 고장이다. 또한 관내에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慶山 林堂洞과 造永洞 古墳群)[사적, 2011년 지정]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유산이 산재한 문화유적의 도시이기도 하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조영동 일대에 민무늬토기 산포지가 있으며, 고인돌은 옥산동, 옥곡동, 자인면 신도리, 남산면의 전지리 · 갈지리 · 연하리, 용성면의 고죽리 · 미산리 · 도덕리, 하양읍 대학리, 남천면 협석리, 와촌면 박사리 등에 있다. 대정동과 압량읍 현흥리에는 선돌이 있다.
삼한시대 유적인 임당동 저습지 유적에서는 목재 농기구와 칠기류 같은 생활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압량읍 압량리의 고대식 광장인 경산 병영유적(慶山 兵營遺蹟)[사적, 1971년 지정], 부적리 고분, 자인면 교촌리 고분, 와촌면 신한리 · 계전리 · 소월리 고분군 등이 있다. 이 중 1982년에 발굴된 경산 임당동 고분군에서 금동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성(土城)으로는 압량읍과 진량읍에 걸쳐 앃아 놓은 압량토성이 있고, 산성으로는 용성면에 용산산성(龍山山城)[경상북도 기념물,1999년 지정]이 있고, 남천면에 금성산성 터가 남아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와촌면 강학리의 경산 불굴사 삼층석탑(慶山 佛窟寺 三層石塔)[보물, 1965년 지정], 와촌면 대한리의 갓바위 부처라 불리는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慶山 八公山 冠峰 石造如來坐像)[보물, 1965년 지정]과 경산원효암마애여래좌상(慶山元曉庵磨崖如來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2006년 지정], 남천면 산전리의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 慶興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보물], 하양읍 사기리의 환성사심검당(環城寺尋劍堂)[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1975년 지정]과 경산 환성사 대웅전(慶山 環城寺 大雄殿)[보물, 1971년 지정] 등이 있다. 이 중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990년 경흥사목조삼존불좌상(慶興寺木造三尊佛坐像)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지금의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현재와 같은 이름으로 바뀌어 보물로 승격되었다.
고건축물로는 중방동의 경산향교대성전삼문(慶山鄕校大成殿三門), 자인면 교촌리의 자인향교(慈仁鄕校), 하양읍 교리의 하양향교(河陽鄕校), 용성면 곡란리의 난포고택(蘭圃故宅)[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 등이 있다. 정자로는 진량읍 내리리에 구연정(龜淵亭), 신상리에 식송정(植松亭) 및 사산정(社山亭), 자인면 북사리에 사중당(使衆堂)이 있다. 경산향교대성전삼문, 자인향교, 하양향교는 모두 1985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지금의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중방동에 자리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는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매병(粉靑沙器 象嵌牡丹文 梅甁)[보물, 1963년 지정] 등 많은 유물이 있다. 그 밖에 자인면 원당리에 최문병 의병장 안장(崔文炳 義兵將 鞍裝)[보물, 1983년 지정], 남천면 산전리에 경산산전동분청사기요지(慶山山田洞粉靑砂器窯址)[경상북도 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개인 삽살개가 1992년 경산의 삽살개(慶山의 삽살개)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산시는 교육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그동안 관내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초 · 중 · 고등학교의 설립이 이어졌고, 대구광역시와 인접한 데다 교통이 발달하여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많은 대학교가 경산시로 이전하거나 새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2025년 5월 기준 경산시 관내에는 경일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신대학교, 영남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대경대학교, 영남외국어대학, 호산대학교, 대구사이버대학교, 영남사이버대학교, 한국복지사이버대학 등 총 13개의 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주요 문화 시설로는 경산시립박물관, 삼성현역사문화관, 영남대학교 박물관 등이 있다. 2007년에 개관한 경산시립박물관은 경산시의 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하고 연구 및 전시 교육하는 지역의 중심적인 문화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던 캠퍼스에서 개관했다가 캠퍼스가 경산시로 이전한 후, 현 건물을 착공하여 1989년에 개관하였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기증 · 수집 유물뿐 아니라 발굴 유물 등 총 2만 2000여 점이 있어 양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전국에서 손꼽힌다.
경산 지역의 주요한 민속놀이로 알려진 한장군놀이는, 동제[마을 제사]의 성격도 띠고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놀이에 더 가까운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본래 자인면을 중심으로 인근의 용성면 주민들이 함께, 신라 후기 또는 고려시대에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킨 것으로 전해지는 ‘한장군’과 그의 누이를 기리며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에서 유래하였다.
한장군제는 1970년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축제의 형태로 바꾸었으며, 이후 단오에 한묘제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자인단오굿, 호장장군 행렬, 여원무, 팔광대 등의 전통 놀이와 의례를 통해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무녀와 함께 여원무를 추며 왜구를 유인하고 섬멸했다는 전설을 재현하고 있다. 2007년 경산자인단오제로 개칭하고, 오늘날까지 자인면 지역에서 중요한 지역 축제로 계승하고 있다.
경산 지역에서 전래 내려오는 대표적인 설화로 「배미재 전설」이 있다. 배미재란 뱀 모양의 산으로, 한자어로는 사산(巳山)이라고 한다. 옛날 이 산 아랫동네에서 행실이 나쁜 여자가 많이 태어났는데, 어느 날 이성재라는 풍수에 밝은 이가 이곳을 지나다가 배미재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뱀이 살아서 펄펄 뛰는 형상이기 때문에 아랫마을에 못된 여자가 난다고 하면서 뱀의 꼬리에 해당하는 서너 군데에 침을 놓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뱀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침 놓은 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소금 몇 가마를 부어 넣자 못된 여자들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중심을 이루는데, 농업노동요 중에는 「논매기 노래」보다 「모내기 노래」가 더 많이 불린다.
경산 지역의 경제 · 산업 구조를 살펴보면 1960년대까지는 전형적인 농업 중심의 형태를 갖고 있었다. 1970년대 산업별 현황을 살펴보면, 농업 부문에서는 미곡 생산이 주를 이루는 한편, 대구사과의 대표 산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과실류 중에서는 사과 생산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섬유산업이 전체 제조업의 약 85%를 차지하며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후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하고 경산군의 안심읍과 고산면이 대구직할시로 편입되면서, 대구직할시권 대학들이 경산군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990년대 대구 지역의 택지 개발 한계에 따라 경산시와 하양읍 등지에서의 주택 개발 증가로 인하여 경지 면적이 줄어들면서 농산물 생산 비중은 점차 감소하게 된다. 과실류 중에는 사과를 대신하여 복숭아와 대추의 생산 비중이 높아졌다.
이즈음부터 경산 지역에서는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특히 진량읍과 자인면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차세대 건설 기계 · 부품, 첨단 메디컬 의료기기, 연구 시설이 융합된 첨단 지식 산업 지구가 들어섰다. 첨단 지식 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생산 비중이 증가하면서 시중 은행 등 금융기관도 크게 증가하였다.
경산산업단지는 경부고속도로와 대구선 철도, 국도, 산업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특히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경상북도의 포항시와 경주시 등에서 대구광역시로 진입하는 요충지에 있으며 대구국제공항과도 가까워 물류 및 산업 활동에 매우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22년 경산4일반산업단지가 완공되면서 경산1일반산업단지 · 경산1-1일반산업단지 · 경산2일반산업단지 · 경산3일반산업단지까지, 총면적 603만 6000㎡에 439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는 대단위 산업단지로 성장하였다. 주력 업종은 자동차 부품, 기계 · 금속, 섬유 등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시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며 서울특별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주시, 부산광역시 등과 연결되고, 경부선 철도가 시의 서부를 지나 서울특별시 및 부산광역시와 연결된다. 이 밖에 국도 25호선이 대구광역시와 경상남도 밀양시, 국도 4호선이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영천시와 연결되는 등 크고 작은 도로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경산시는 삼성현(三聖賢) [원효 · 설총 · 일연]의 출신지로도 유명하다. 이에 이들의 정신과 의의를 계승 · 발전하고,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관광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경산시립박물관, 삼성현역사문화공원, 반룡사, 불굴사, 구계서원[도동서원], 제석사와 경산원효암마애여래좌상 등이 있다.
한편 대구광역시 동구 · 군위군과 경상북도 영천시 · 칠곡군 · 경산시에 걸쳐 있는 팔공산 봉우리 관봉 정상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관봉의 우리말은 갓바위로, 흔히 갓바위 부처님이라 불린다. 갓바위 부처님에게 정성껏 빌면 소원 한 가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여 한 해 1,200만여 명이 기도하러 가는 전국 최고의 기도 도량이다.
경산시에서는 갓바위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홍보하고자 1998년부터 ‘경산 갓바위소원성취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유교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지역답게 경산향교(慶山鄕校), 조곡서원(早谷書院), 관란서원(觀瀾書院), 금호서원(琴湖書院), 하양향교, 자인향교 등을 둘러보는 유교문화 탐방 코스도 잘 알려져 있다..
경산시의 북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8.66㎢이고, 인구는 3만 5427명이다. 하양읍 행정복지센터는 금락리에 있다. 16개 법정리와 43개 행정리가 있다.
고려 전기에는 하주(河州)로 불리다가 1018년(현종 9) 하양(河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1742년(영조 18) 화성현(花城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대구부(大邱府) 소속의 하양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산군에 편입되며 하양면으로 개편되었고, 1973년에는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으로 금호강이 흐르고, 북쪽은 팔공산 자락과 무학산, 소리산 등이 둘러싸고 있다. 북서쪽에는 환성산이 있는데, 이 산에서 발원한 조산천(造山川)이 동남쪽으로 흘러 금호강에 합류된다. 동쪽의 청통천(淸通川)도 금호강으로 흘러들어서, 동남부는 이들 하천이 퇴적한 충적지로서 비옥한 농경지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법정리는 풍부한 수자원과 금호평야 및 산지 사이에 분포하는 곡저평야로 인하여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을 보인다.
조선 전기인 1438년(세종 20)에 좌의정을 역임한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가 하양읍 출신이다. 보물로 지정된 경산 환성사 대웅전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산의 삽살개 외 11점의 국가지정문화유산과 하양향교, 임호서원(臨湖書院)과 백곡서원(栢谷書院), 전통 사찰인 환성사(環城寺)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한 전통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대도시 근교에 위치한 도농 복합형 도시로, 대추 · 복숭아 · 자두 등 과수 농업이 활발하며, 이들 품목은 전국 생산량의 약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보인다. 경부고속도로, 대구선 철도, 대구-포항 간 산업도로 등 사통팔달로 연계된 교통의 요충지로, 대구광역시와 인접하여 섬유 · 식품 가공업체 등이 입지해 있다.
2024년 기준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8개, 초등학교 4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2개와 대구가톨릭대학교 · 경일대학교 · 호산대학교 등 3개의 대학교가 있다.
경산시의 동부 중앙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6.17㎢이고, 인구는 3만 7941명이다. 진량읍 행정복지센터는 신상리에 있다.
진량읍은 신라시대 마진량현으로 출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량면의 북반은 하양현에, 남반은 자인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며 옛 자인군 중북면과 하북면, 하양군 낙산면(落山面)과 중림면(中林面)을 합쳐 진량면으로 하였고, 1997년 11월 1일 진량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의 곳곳에 금호강과 금호강의 크고 작은 지류가 흐르고, 문천지를 비롯한 여러 저수지가 산재하여 수자원이 풍부하다. 지형은 대부분이 낮은 구릉성 산지와 그 사이 소규모 곡저평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서부에는 넓은 금호평야가 있어 농촌 마을의 모습을 보인다. 논농사가 주를 이루며, 그 외에도 특용작물을 비롯한 농산물과 사과 · 복숭아 · 대추 등의 과수와 묘목 재배 및 양잠이 활발하다.
경부고속도로 경산IC가 있고, 대구광역시와 인접하여 섬유 및 식품 가공업체 등이 입지해 있다.
신상리 · 신제리 · 대원리 일대를 중심으로 경산1일반산업단지가 자리하는데, 총면적은 157만 7413㎡로 공장 용지 114만 9657㎡[73%], 지원 시설 4만 4295㎡[3%], 공공시설 28만 6509㎡[18%], 녹지시설 9만 6952㎡[6%]로 구성되어 있다. 입주 기업은 기계, 조립 금속, 섬유, 의복, 전기, 전자, 자동차 부품 등의 무공해 업종이다. 염색 · 표백 · 도금 및 중금속 등 특정 유해 물질과 공해 과다 배출 업체, 관리 기관이 인정하는 환경 유해 업종은 입주가 제한된다. 또한 신제리, 다문리 일원에 239만 6500.8㎡ 규모의 경산4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는데, 주요 업종은 탄소 융복합, 신소재, 정밀 기기 산업 등이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6개, 초등학교 5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1개가 있으며, 대구대학교와 영남신학대학교가 있다.
경산시의 중앙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8.33㎢이고, 인구는 2만 2787명이다. 압량읍 행정복지센터는 부적리에 있다.
압량은 삼한시대 변진의 한 나라인 압독국 혹은 압량소국에서 차용한 이름이다. 원래 압독국의 수도였으나 102년 신라에 병합되었고, 조선시대에 경산군 동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산군 동면과 자인군 서면을 합하여 압량면으로 하였다. 2020년 1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다.
북부 지역은 금호평야의 일부이며, 진량읍과 자인면의 경계를 따라 오목천이 흐른다. 산지 사이 계곡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대규모 선상지가 금호강과 마주치면서 비교적 넓은 들판을 형성하고 있다. 중부는 높이 100m 이하의 구릉과 곡저평야, 크고 작은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에는 백자산(栢紫山)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지가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와 경산시 간 지방도가 읍의 북부와 중부를 통과하고, 대구광역시와 하양읍 간 도로가 읍 북부를 지나가 교통이 편리하다. 대구광역시와 영남대학교가 인접해 있다는 위치적 특징으로 인해 대구광역시 생활권으로 여겨지며, 일일 유동 인구가 5만여 명에 이른다.
다양한 업종의 공장이 들어서면서 많은 농경지가 공업용지로 변했으며, 압량산업단지를 비롯하여 지역 곳곳에 260여 개 중소기업이 있다. 그 외에도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특히 금구리 맛대추와 현흥리 꿀참외는 경산시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전국에 유통되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삼국 통일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지역으로, 642년 압량주 군주로 부임한 김유신이 군사훈련을 시킨 연무장[군사훈련장]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1552~1617) 부대가 만든의 진지 등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2개,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가 있다.
경산시의 북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7.9㎢이고, 인구는 5,576명이다. 와촌면 행정복지센터는 덕촌리에 있다.
고려 충목왕(忠穆王: 1337~1348) 때 영양군(永陽郡)[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였다가 하주군(河州郡)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령군 남면과 합하여 와촌면이 되었다.
팔공산지의 연장부로서 북서부에 관봉(冠峰: 850m) 등이 솟아 있고, 서부 산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두 개의 평행한 산맥이 이 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부에는 금호강의 지류인 청통천이 관류하면서 상류의 음양리 부근에서 전형적인 산간분지를, 중류에서는 쉬염들 · 구만들 등의 비교적 넓은 곡저평야를, 하류에서는 금호평야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며, 주곡농업 이외에 호두 · 산나물 등의 임산물 생산이 많고, 밤 · 사과 · 포도 · 복숭아 · 자두 등의 과수 재배도 활발하다. 한편 양봉, 양계, 양돈과 한우, 사슴, 개 등의 사육도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언양-우보 간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공산-와촌 간 군도가 면의 중앙부를 횡단한다. 국가유산으로 강학리에 경산 불굴사 삼층석탑, 대한리에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과 선본사, 계전리에 원계서원(遠溪書院)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3개, 초등학교 3개가 있다.
경산시의 남부 중앙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 38.17㎢이고, 인구는 3,694명이다. 남산면 행정복지센터는 산양리에 있다.
원래 옛 자인군의 상남면(上南面)과 하남면(下南面)에 해당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병합하여 남산면이 되었다. 면의 동 · 남 · 서부는 모두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대왕산(大王山: 605m) · 용산(龍山: 435m)이 각각 남쪽 경계와 동쪽 경계에 솟아 있다. 북부는 면계를 따라 흐르는 오목천이 곡류하면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남부산지에서 발원하는 4개의 지류가 북류하여 이와 합류한다. 취락과 경지는 오목천과 4개 지류의 연안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이외에 복숭아 · 포도 · 사과 등의 과수 농업이 활발하다. 임산물 중에서는 산나물이 많이 난다. 교통은 언양-우보 간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산-압량 간 군도가 북부 경계 부근을 통과하고 있다. 상대리에 상대온천, 반곡리의 반곡마을에는 반곡약수가 있다.
안심리 대곡(大谷)에 대국사(大國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절터와 4층석탑만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1개, 초등학교 1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경산시의 남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53㎢이고, 인구는 2,848명이다. 남천면 행정복지센터는 삼성리에 있다.
신라시대부터 경산의 한 구역으로서, 1897년에 경산군 남면이라 칭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천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부는 백자산 · 선의산 · 용각산, 서부는 성암산 · 병풍산 · 동학산 · 상원산 등에 둘러싸여 경산시에서 산지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남경에서 발원한 남천이 산지를 동서로 양분하고 북류하면서 삼성리 이북에서 긴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이곳에 경지와 교통로, 취락이 집중 분포한다.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며, 주곡농업 외에도 양봉이 많이 이루어지고 산수유도 많이 생산된다. 남천의 범람원에는 사과와 포도 등 과수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진해-청주 간 국도와 경부선이 하곡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청도 등지와 연결된다.
국가유산으로 산전리 경흥사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과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慶山 慶興寺 所藏 須彌壇 部材)[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가 있다. 협석리에 초계 정씨(草溪 鄭氏)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1개와 초등학교 1개, 대학교 1개 [영남외국어대학]가 있다.
경산시의 남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9.41㎢이고, 인구는 3,280명이다. 용성면 행정복지센터는 당리리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노사화현(奴斯火縣)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자인현이 되어 장산군에 속하였다. 1895년 자인현이 자인군으로 승격되었고 그 뒤 자인군이 경산군에 합병될 때 자인군의 상동면(上東面)과 하동면(下東面)이 합쳐져 용성면이 되었다.
삼악산 · 금학산 · 금박산 · 구룡산 · 발백산(髮白山) · 용산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나 당리리 부근에서 관란천의 충적평야가 발달하였고, 관란천 지류가 산지 속을 깊이 침식하면서 산간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곡농업 이외에 과수 재배가 행해지고 도토리가 생산되며, 한우 · 젖소 · 산양 등의 사육이 진행되고 있다. 도로는 언양-우보 간 지방도가 면의 남서부를 통과하고 있지만 교통이 편리한 편은 아니다.
미산리에 관란서원이 있었는데, 고종 때 철폐되어 지금은 작은 규모의 건물만 남아 있다. 고죽리 입구에 있는 칠성바위는 정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게 해 준다는 속신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덕천리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 동족 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1개, 초등학교 1개, 중학교 1개가 있다.
경산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2.05㎢이고, 인구는 5,983명이다. 자인면 행정복지센터는 북사리에 있다.
옛날의 노사화현 또는 기화현(其火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자인현으로 개칭하여 장산군에 속하였다. 고려 현종(顯宗: 9921031) 때 경주부에 속했다가 조선 인조(仁祖: 15951649) 때 복현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산군에 합병되어 자인면이 되었다.
북동부 면계를 도천산 · 금학산 · 삼악산 등이 둘러싸고 있고, 남 · 서부에는 압량읍 · 남산면과의 경계를 따라 금호강의 지류인 오목천이 흐르며 오목천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평야지대 논에서 쌀이 생산되며, 사과와 채소도 많이 재배된다. 도로는 언양-우보 간 지방도, 밀양-경산 간 지방도, 자인-대창 간 군도가 면의 중앙부에서 교차하고 있으며, 대구광역시와의 교통이 편리하다.
교촌리에 고분군과 자인향교가 있고, 지금은 메워진 버들못 옆에 한장군이 내리쳤다는 검흔석(劍痕石)이 남아 있다. 서부리에 한장군묘와 사당이 있다. 울옥리는 함양 박씨(咸陽 朴氏) 동족 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 유치원 1개, 초등학교 1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2개, 대학교 1개 [대경대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