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음악은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에 반주로 사용하는 음악이다. 궁중무용의 반주 음악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 처음 나타난다. 궁중무용의 반주 음악은 당악정재·향악정재·일무를 위한 음악으로 나눈다. 민속무용의 반주 음악에는 민간춤·농악춤·탈춤·굿춤 등의 반주 음악이 있다. 여러 당악정재에 사용된 음악은 대부분 서로 겹친다. 향악정재도 마찬가지라서 실제 사용된 곡의 수는 많지 않다. 특히 향악정재는 당악도 사용하고 1946년 이후 굿거리와 같은 민속악도 사용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향악정재의 춤사위와 장단 등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크게는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에 쓰이는 음악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궁중무용에 사용하는 음악은 다시 당악정재(唐樂呈才) · 향악정재(鄕樂呈才) · 일무(佾舞)를 위한 음악으로 나눌 수 있고, 민속무용에 사용하는 음악은 무악(巫樂) · 탈춤 · 농악(農樂) · 승무(僧舞) 및 기타 각 지방의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궁중무용에 관한 기록과 반주로 사용된 음악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고려사』 이후 궁중무용은 여러번 변하게 되고, 음악 또한 시대에 따라 쓰임이 변하였다. 그래서 고려 이후 조선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없어진 것도 많으며 새로 창작된 것도 또한 많다.
(1) 당악정재의 음악
당악정재는 고려 때 중국에서 전래된 것, 조선 초에 창작된 것, 조선 말에 창작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고려 때 중국에서 전래된 것에는 「헌선도(獻仙桃)」 · 「수연장(壽延長)」 · 「오양선(五羊仙)」 · 「포구락(抛毬樂)」 · 「연화대(蓮花臺)」의 다섯 가지로 『고려사』 악지(樂志)에 나타나 있다. 이 다섯은 조선 말까지 전하였고, 「포구락」은 현재도 연행(演行)되고 있다.
이 중 「헌선도」에는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을 보면 고려 이후 조선 초기까지 「회팔선인자(會八仙引子)」 · 「헌천수(獻天壽)」의 만(慢)과 최자(嗺子), 「금잔자(金盞子)」의 만과 영(令), 「서자고(瑞鷓鴣)」의 만과 최자, 「천년만세인자(千年萬歲引子)」의 당악이 사용되었으나, 조선 말기는 향악화(鄕樂化)된 「보허자령(步虛子令)」과 「향당교주(鄕唐交奏)」로 바뀌었다.
「수연장」 역시 『고려사』에 의하면 「연대청인자(宴大淸引子)」 · 「중강령(中腔令)」 · 「파자령(破子令)」으로 반주하였고, 『악학궤범』에 의하면 「청평악파자(淸平樂破子)」가 추가되었다. 그 뒤 조선 말기는 「보허자령」 · 「향당교주」 · 「중강」의 곡이 반주로 사용되었다. 「오양선」에는 「오운개서조인자(五雲開瑞朝引子)」 · 「만엽치요도(萬葉熾瑤圖)」의 영과 만 · 최자, 「보허자령」 · 「중강령」 등의 당악곡이 반주된 것으로 『고려사』와 『악학궤범』에 나와 있다.
조선 말기는 「보허자령」과 「향당교주」가 사용되어 결과적으로 「헌선도」의 반주음악과 같아졌다. 「포구락」은 「절화령(折花令)」 또는 삼대사(三臺詞) · 「수룡음(水龍吟)」의 영 또는 인쇄(引殺) · 「소포구락령」 · 「청평악령」과 「파자」의 곡으로 반주하였다고 『고려사』에 전하고 있다.
『악학궤범』 시절에는 이 중 끝의 두 곡은 반주로 사용하지 않았고, 조선 말기는 주로 「향당교주」로 일관되어 반주하였다. 「연화대」의 반주음악으로는 『고려사』에는 「오운개서조인자」 · 「중선회인자(衆仙會引子)」 · 「백학자(白鶴子)」 · 「헌천수」의 만과 영, 「금잔자」의 만과 최자, 「서자고」의 만과 최자 등이 보이고, 『악학궤범』에는 「전인자(前引子)」 · 「중선회인자」 · 「헌천수만」 · 「반하무(班賀舞)」 · 「후인자(後引子)」 등이 보인다.
조선 말기는 「보허자령」으로 단일화되어 반주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되었던 거의 대부분의 음악은 현재 전하지 않아 그 음악의 내용과 특성은 전혀 알 수 없다.
② 조선 초기에 창작된 당악정재는 「금척(金尺)」 · 「수보록(受寶籙)」 · 「근천정(覲天庭)」 · 「수명명(受明命)」 · 「하황은(賀皇恩)」 · 「하성명(賀聖明)」 · 「성택(聖澤)」의 7종이 있다. 이 무용들은 죽간자(竹竿子)와 의장대(儀仗隊) 등 당악정재양식을 그대로 도입하였고, 그 밖에 조선 초기는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육화대(六花隊)」와 「곡파(曲破)」도 보인다.
「금척」은 『악학궤범』에 의하면 「오운개서조인자」 · 「최자령」 · 「금척령」 · 「소포구락령」 등의 당악이 반주로 사용되었으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보허자령」과 「향당교주」가 사용되어 「헌선도」와 「오양선」의 반주곡과 같아졌다.
「수보록」에는 「회팔선인자」 · 「보허자령」 · 「금전락령(金殿樂令)」 등의 당악이 『악학궤범』 시절에 사용되었으나, 조선 말기의 『각정재무도홀기(各呈才舞圖笏記)』에는 이 춤이 보이지 않는다. 「근천정」은 『악학궤범』에 의하면 「오운개서조인자」 · 「중강령」 · 「금전락령」 등의 당악을 반주로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에 이미 전해오지 않는다.
「수명명」도 역시 조선 말기에는 전해오지 않고, 『악학궤범』 시절에는 「회팔선인자」 · 「보허자령」 · 「최자령」 · 「금잔자」의 만과 영의 당악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하였다. 「하황은」에는 「회팔선인자」 · 「금전락령」 · 「중강령」 · 「금최자(金嗺子)」 · 「서최자(瑞嗺子)」 등의 당악이 반주음악으로 『악학궤범』 시절에 사용되었으나, 조선 말기는 「여민락령(與民樂令)」과 「향당교주」가 사용되었다.
「하성명」은 『악학궤범』 시절에 「천년만세인자」 · 「헌천수만」 · 「하성조령(賀聖朝令)」 등의 당악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는 전해오지 않는다. 「성택」 역시 조선 말기에는 전해오지 않고, 『악학궤범』 시절에는 「천년만세인자」 · 「최자」 · 「하성조령」 · 「헌천수만」 · 「중강령」 등의 당악이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육화대」는 「천년만세인자」 · 「최자령」 · 「중강령」 등의 당악곡이 『악학궤범』 시절에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그 뒤 조선 말기는 「보허자령」과 「향당교주」, 가곡(歌曲) 중 「농(弄)」과 「낙(樂)」 · 「계락(界樂)」 · 「편(編)」 등이 사용되었다.
「곡파」는 조선 말기까지는 전해오지 않고, 『악학궤범』 시절에는 「회팔선인자」 · 「석노교(惜奴嬌)」 중 전편(攧遍)과 입파(入破) · 허최(虛催) · 최곤(催袞) · 최박(催拍) · 중곤(中袞) · 헐박(歇拍) · 쇄곤(煞袞) 등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곡들도 몇 곡을 제외하고는 그 대부분이 현재 전하고 있지 않아, 음악적 내용과 특성은 전혀 알 수가 없다.
③ 조선 말기에 창작된 당악정재는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 ·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 「제수창(帝壽昌)」 · 「최화무(催花舞)」 등의 11가지가 있다. 이 11가지는 비록 당악정재이기는 하나 반주음악은 한결같이 향악화된 「보허자령」과 「향당교주」를 사용하였다.
이상 당악정재에 사용된 음악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대부분이 서로 겹치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로 사용된 곡의 수는 그렇게 많지 못하였다. 또한 무용마다 음악적 특색도 구별되기보다는 거의가 일관된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2) 향악정재의 음악
『고려사』 악지에는 「무고(舞鼓)」 · 「동동(動動)」 · 「무애(無㝵)」의 세 가지 정재가 보인다. 「무고」는 『고려사』에 의하면 「정읍」곡에 그 사(詞)를 불렀다. 조선 말기 이후는 「향당교주」에 5언의 한문으로 된 원무(元舞)와 협무(挾舞)의 창사(唱詞)를 부르고 있다.
「동동」은 『고려사』에 의하면 「동동」의 곡에 그 사를 불렀고, 조선 말기는 「정읍」곡을 연주하였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고 있다. 「무애」는 「무애」의 사를 불렀으나 『악학궤범』 시절에는 전하지 않았고, 조선 말기에 재연되어 「향당교주」와 가곡 중 「편」의 음악이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고 있다.
조선 초기에 창작된 것으로 『악학궤범』에 전하는 향악정재는 「보태평(保太平)」 · 「정대업(定大業)」 · 「봉래의(鳳來儀)」 · 「향발(響鈸)」 · 「학무(鶴舞)」 ·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 「교방가요(敎坊歌謠)」 · 「문덕곡(文德曲)」의 8가지가 있다. 이 중 「보태평」과 「정대업」은 음악이 약간 변하였으나 현재까지 종묘제례악으로 전하고 있다.
「봉래의」는 『악학궤범』에서는 「전인자」 · 「여민락령」 · 「치화평(致和平)」 · 「취풍형(醉豊亨)」 · 「후인자」가 반주음악으로 사용되었다고 했으나, 조선 말기는 「보허자령」 · 「여민락령」 · 「향당교주」 그리고 가곡의 「농」과 「편」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전해오지 않는다. 「향발」과 「학무」는 『악학궤범』에서는 「보허자령」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에는 「향당교주」로 변하였고, 이 중 「향발」은 현재 전해오지 않는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은 『악학궤범』 시절에 「봉황음(鳳凰吟)」 · 「삼진작(三眞勺)」 · 「정읍」 · 「북전(北殿)」 · 「영산회상(靈山會相)」 · 「보허자령」 · 「미타찬(彌陀讚)」 등을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는 「영산회상」 · 「북전」 · 「미타찬」 · 「본사찬(本師讚)」 · 「관음찬(觀音讚)」 등을 사용하였다. 이후는 마지막 3곡의 불가(佛歌)가 없어지고, 지금은 「처용무」만 전하고 있다.
「교방가요」는 『악학궤범』 시절에 전부고취(前部鼓吹)로 「여민락령」, 전 · 후부고취로 「환궁악(還宮樂)」 등을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 이후는 전하지 않는다. 「문덕곡」 역시 조선 후기 이후는 전해오지 않고, 『악학궤범』 시절에는 「소포구락령」과 「문덕곡」의 노래를 사용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 창작된 정재에는 다음과 같은 음악이 사용되었다.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 「검기무(劍器舞)」 · 「고구려무」 · 「무산향(舞山香)」 · 「박접무(撲蝶舞)」 · 「보상무(寶相舞)」 · 「침향무(沈香舞)」 · 「첨수무(尖袖舞)」 · 「첩승무(疊勝舞)」 · 「춘앵전(春鶯囀)」 등은 「향당교주」를 사용하였고, 「초무(初舞)」는 「보허자령」을, 「헌천화(獻天花)」는 「보허자령」과 「향당교주」를 사용하였다.
「경풍도(慶豊圖)」 · 「만수무(萬壽舞)」 · 「사선무(四仙舞)」 · 「향령무(響鈴舞)」 등은 「보허자령」과 「향당교주」 그리고 가곡을 사용하였다. 「선유락(船遊樂)」은 「취타(吹打)」와 「어부사(漁父詞)」를, 「항장무(項莊舞)」는 「대취타」 · 삼현육각(三絃六角) · 「거상악(擧床樂)」을 사용하였다.
이상 향악정재의 반주에 사용된 곡들도 대부분이 당악정재와 마찬가지로 겹쳐서 사용되고 있어 실제로 곡의 수는 많지 않다. 그리고 향악뿐만 아니라 당악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음악의 사용은 1910년 이후 다시 변하였다.
즉, 1945년까지는 「삼현영산회상(三絃靈山會相)」 · 「평조회상(平調會相)」 중 「상영산(上靈山)」 · 「중령산」 · 「세영산(細靈山)」 · 「삼현환입(三絃還入)」 · 「염불환입(念佛還入)」 · 「타령(打令)」 등이 사용되었고, 「정읍」 · 「보허자」 · 가곡 중 「계락」 등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민속악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946년 이후 굿거리와 같은 민속악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춤사위와 장단 등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3) 일무의 음악
일무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서 사용된다. 그리고 이 둘의 반주음악은 바로 해당 제례음악이 되고 있다.
민속무용에 관한 기록이 그다지 많지 않아 민속무용 음악이 어떻게 변천했는지 분명히 알 길이 없다. 조선 말기 김홍도(金弘道)의 무악도(舞樂圖)와 신윤복(申潤福)의 검무도(劍舞圖)에 그 반주음악이 북 · 장구 · 목피리 · 곁피리 · 젓대 · 해금으로 편성된 이른바 삼현육각(三絃六角)인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음악이 어떻게 짜였는지 알 길은 없다.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敎坊歌謠)에도 지방관아의 춤과 민속춤에 대한 것이 보이나 그 반주음악 역시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지금 전승되고 있는 민속춤의 반주음악은 그 춤의 종류에 따라 전문적인 춤꾼〔舞員〕들의 민간춤(民間藝術舞踊)의 반주음악, 농악춤의 반주음악, 탈춤의 반주음악, 굿춤(巫舞)의 반주음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 민간예술춤의 반주음악
민간예술춤에는 검무(劍舞) · 무고(舞鼓) · 승무(僧舞) · 한량무(閑良舞) · 남무(男舞) · 살풀이춤 등이 있다. 검무의 반주음악에 긴염불 · 허튼타령 · 자진허튼타령이 쓰이고, 무고 · 한량무 · 남무는 긴염불 · 허튼타령 · 굿거리가 쓰인다. 승무는 긴염불 · 자진염불(반염불) · 허튼타령 · 자진허튼타령 · 굿거리 등이 쓰이며, 살풀이는 살풀이(시나위)와 자진살풀이가 쓰인다. 이러한 민간예술춤은 삼현음악 반주로 되어 있다.
(2) 탈춤의 반주음악
탈춤반주음악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봉산탈춤 · 강령탈춤 · 은율탈춤과 같이 해서가면극(海西假面劇)의 반주음악은 삼현육각으로 긴염불 · 굿거리 · 허튼타령 · 당악장단 등을 연주하며,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 · 송파산대(松坡山臺)놀이 · 경기가면극(京畿假面劇)의 반주음악에는 삼현육각으로 긴염불 · 허튼타령 · 굿거리 · 당악 등을 연주한다.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 통영오광대(統營五廣大) · 가산오광대(駕山五廣大) · 동래야류(東萊野遊) · 수영야류(水營野遊)와 같이 영남가면극(嶺南假面劇)의 반주음악에는 매구풍장(농악)으로 덧뵈기 · 덩덕궁이가 쓰인다. 북청사자(北靑獅子)놀음의 반주에는 퉁소풍장으로 사자곡 · 넋두리 · 봉심이 · 애원성 등이 쓰인다.
(3) 농악춤의 반주음악
농악춤의 반주음악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이리농악과 같은 호남우도농악(湖南右道農樂)의 쇠가락(농악장단)에는 오채질굿 · 풍류굿 · 양산도 · 삼채 · 다드래기 · 호호굿 · 오방진굿 · 외마치길굿 따위가 있어 춤의 반주에는 풍류굿 · 삼채 · 다드래기 등이 주로 쓰인다.
임실필봉농악(任實筆峰農樂)과 같은 호남좌도농악(湖南左道農樂)의 쇠가락에는 채굿 · 참굿 · 풍류굿 · 삼채 · 쨍그랑 · 호호굿 · 자진호호굿 · 영산자진영산 등이 있으며, 춤의 반주에는 풍류굿 · 삼채 · 휘모리 · 영산 · 자진영산이 주로 쓰인다. 평택농악과 같이 경기농악에는 칠채 · 일채 · 삼채 · 굿거리 · 동리삼채 · 자진가락 · 쩍쩍이 등이 있는데, 춤의 반주에는 삼채굿거리 · 자진가락 · 동리삼채 등이 주로 쓰인다.
강릉농악과 같은 영동농악(嶺東農樂)에는 한마치(일채) · 삼채 · 길놀이 · 굿거리 · 이채 · 사채 등이 있는데, 춤에는 한마치 · 삼채 · 굿거리 등이 주로 쓰인다. 청도차산농악(淸道車山農樂)과 같은 경북농악의 쇠가락에는 걸굿 · 자진모리 · 무정작궁 · 덧뵈기 · 호호딱딱 · 부정가락 · 굿거리 등이 있는바, 춤에는 굿거리 · 덧뵈기 · 무정작궁 · 자진모리 등이 주로 쓰인다.
진주농악과 같은 경남농악 쇠가락에는 덧뵈기 · 길군악 · 반상채 · 호호굿 · 반덧뵈기 · 영산다드래기 등이 있는데, 춤의 반주에는 덧뵈기 · 반삼채 · 반덧뵈기 · 영산다드래기 등이 주로 쓰인다.
(4) 굿춤의 반주음악
굿〔巫儀式〕에는 여러 가지 음과 장구 장단이 쓰이는데, 이 가운데 굿춤 · 반주음악으로 쓰이는 음악과 장구장단이 따로 있다. 이것들은 또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울을 포함한 경기북부굿의 춤은 바라 · 장구 · 피리 · 젓대 · 해금으로 편성한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긴염불 · 반염불 · 삼현도드리 · 굿거리 · 허튼타령 · 당악 등이 반주음악으로 쓰인다.
경기남부굿의 춤에는 징 · 장구 · 피리 · 젓대 · 해금으로 편성된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긴염불 · 삼현도드리 · 굿거리 · 자진굿거리 · 허튼타령 · 당악이 쓰이고, 또 꽹과리 · 장구 · 징으로 편성된 쇠풍장으로 반설음(터벌림) · 진쇠 · 올림채 · 부정놀이 · 겹마치 · 덩덕궁이 등이 쓰인다. 충청도 · 전라도 굿춤의 반주음악은 삼현육각으로 살풀이시나위 · 덩덕궁이시나위(자진모리)가 쓰인다. 제주굿춤의 반주음악은 북 · 대영 · 설쇠로 느진석 · 중판 자진석을 연주한다.
함경도 굿춤은 바라 · 징 · 장구로 정적기를 반주하며, 강원도와 경상도 동해안 굿춤은 꽹과리 · 징 · 장구로 푸너리 · 드렁갱이 · 두나백이 · 도장 · 동살풀이 등을 연주하고, 경상도 남해안 굿춤은 조너리 · 올림채 · 덩덕궁이를 징 · 장구로 연주하고, 한편 삼현육각으로 굿거리타령을 연주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