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사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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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18품계 중 제8등급의 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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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18품계 중 제8등급의 품계.
개설

995년(성종 14)에 제정된 문산계(文散階)에서 태중대부(太中大夫)·중대부(中大夫), 무산계(武散階)에서 선위장군(宣威將軍)· 명위장군(明威將軍)이 각각 상하의 쌍계(雙階)로 제정되었다.

내용

문종 관제에 의하면,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급사중(給事中)·중서사인(中書舍人), 삼사(三司)의 부사(副使), 어사대(御史臺)의 중승(中丞), 국자감(國子監)의 사업(司業), 예빈성(禮賓省)·위위시(衛尉寺)·대복시(大僕寺)·대부시(大府寺)·사재시(司宰寺)의 소경(少卿), 비서성(秘書省)·전중성(殿中省)·소부감(小府監)·장작감(將作監)·사천대(司天臺)의 소감(少監), 동궁관(東宮官)의 시강학사(侍講學士)·시독학사(侍讀學士)·가령(家令) 등이 종4품 관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 밖에 개경5부(開京五部)의 사(使), 도재고(都齋庫)의 부사, 외직 가운데 병마부사(兵馬副使), 서경(西京)·동경(東京)·남경(南京)의 부유수(副留守), 대도호부(大都護府)·대도독부(大都督府)의 부사(副使), 중도호부의 사 등이 4품 이상으로써 임명되었다. 도병마사(都兵馬使)의 판관(判官)은 종4품 소경 이하가 겸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산직(散職)에서 무반은 4품 이상일 경우 검교직(檢校職)이, 5품 이하일 경우 동정직(同正職)이 각각 설정되어 있었다.

예종 때 보문각(寶文閣)의 직학사(直學士)가 종4품 관직으로 신설되었고, 1178년(명종 8) 서경 부유수가 정3품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급사중이 중사(中事)로, 전중성 소감이 전중시(殿中寺) 소윤(少尹)으로 개칭되고, 대도호부·대도독부의 부사는 혁파되었다.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간섭에 따른 관제개편에서는 문산계가 조봉대부(朝奉大夫) 및 조현대부(朝顯大夫)로 바뀌었고, 어사대 중승이 감찰사 시승(侍丞)으로, 국자감 사업이 국학(國學)의 사예(司藝)로 각각 개칭되었다.

1298년 충선왕의 즉위 후 관제 개혁 때, 문산계는 단계(單階)의 중대부(中大夫)로 제정되었고, 정4품 좌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가 종4품으로 강등되는 대신 종4품 도첨의사인(都僉議舍人)이 정4품으로 승격되었다. 이 밖에 종4품 관직으로 삼사의 부사, 보문각직학사, 성균감사업, 종정시(宗正寺)·위위시·대복시·전객시(典客寺)·외부시(外府寺)의 소경, 비서감(秘書監)·내부감(內府監)·선공감(繕工監)·사진감(司津監)·사천감(司天監)의 소감(少監) 등이 두어졌다.

그러나 같은 해 충선왕이 퇴위하자, 문산계는 조봉대부 및 조현대부로 복구되었고, 각 시(寺)의 소경이 소윤으로 개칭되었다. 1308년 충선왕의 복위 후 이루어진 관제개혁에서 문산계가 단계의 봉선대부(奉善大夫)로 개정되었다. 이 때 5품 관계가 대부계(大夫階)에서 낭계(郎階)로 바뀜에 따라 봉선대부는 대부계의 최하위 관계가 되었다.

관직에서는 급사중이 혁파되고, 시·감의 소윤은 혁파되거나 정4품의 부정(副正)·부령(副令)·장(長) 등으로 개칭됨으로써 첨의부의 좌우간의대부, 삼사의 부사, 사헌부장령, 성균관악정, 보문각직학사, 전중감소윤, 사의서(司醫署)·서운관(書雲觀)·내알사(內謁司)의 부정 등이 종4품 관직으로 되었다.

또한, 4품 이상이 임명되던 동경·남경의 부유수는 동경·남경이 각각 계림부(鷄林府)와 한성부(漢城府)로 개편되면서 혁파되었다. 그리고 인신사(印信司)·응방(鷹坊)의 부사가 종4품 관직으로 신설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전중감의 소윤이 종부시(宗簿寺)의 부령으로 개칭되었고, 1314년(충숙왕 1) 보문각 직제학이 정4품으로 승격되었다. 1331년(충혜왕 1) 위위시·소부시의 소윤이 종4품 관직으로 다시 두어졌다. 그 뒤 각 시의 부령이 정4품에서 종4품으로 강등되어, 전교시(典校寺)·종부시·사복시·전객시·내부시(內府寺)·선공시·사재시 등에 두어졌다. 이 밖에 좌우사의대부(左右司議大夫), 삼사 부사, 감찰사장령, 성균관사예, 전의시부정 등이 종4품 관직이 되었다.

  1. 반원정치기

1352년(공민왕 1) 첨의부의 급사중이 다시 설치되었다가 곧 혁파되었다. 1356년 관제개혁에서는 문산계가 조산대부(朝散大夫)로 개정되었다. 그리고 중서문하성의 중서사인, 어사대의 시어사(侍御史), 국자감사업, 종정시·위위시·예빈시·사농시(司農寺)·사재시·대부감의 소경, 비서감·소부감·장작감·군기감(軍器監)·태의감(太醫監)·사천감의 소감 등이 종4품 관직이 되었다. 이 때 중서문하성의 좌우사의대부는 종4품에서 종3품 관직으로 승격되었고, 삼사의 부사와 사복시의 부령은 혁파되었다.

1362년 문산계가 봉선대부로 환원되었으며, 관부의 명칭과 함께 관직명도 개칭되어 도첨의부(都僉議府)의 내서사인(內書舍人), 감찰사장령, 성균관사예, 전교시·종부시·전객시·내부시·선공시·사재시의 부령, 사복시·전농시(典農寺)·전의시(典醫寺)·서운관의 부정, 위위시·소부시의 소윤 등이 종4품 관직으로 되었다. 또한, 전의시(典儀寺)의 부령이 종4품 관직으로 신설되었고, 삼사의 부사는 다시 설치되었으나 정4품으로 승격되었다.

1369년에도 관제가 개편되어 문산계가 조산대부와 조열대부(朝列大夫)의 쌍계로 되었고, 관직에서는 대체로 1356년의 개정관제가 복구되었다. 다만, 전의시부령이 대상시소경으로 개칭되면서 정4품으로 승격되었고, 각도도통사(各道都統使)의 경력(經歷)이 4품 관직으로 신설되었다. 1372년에 또다시 문산계가 봉선대부로 개정되고, 관직도 대부분 1362년의 개정관제로 환원되는 변화가 있었다.

한편, 공민왕 때에는 환관 직제로서 내시부(內侍府)가 설치되어 동첨사(同僉事)가 종4품 관직이 되었으나, 우왕 때 곧 폐지되었다. 그리고 1389년(공양왕 1) 위위시소윤이 혁파되었고, 이듬해 군자시소윤과 사수시부령이 종4품 관직으로, 동궁관의 좌우필선(左右弼善)이 4품 관직으로 신설되었다. 1391년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의 경력이 4·5품 관직으로, 외직의 염문부사(廉問副使)가 4품 관직으로 각각 두어졌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문산계(文散階)」(박용운, 『진단학보(震檀學報)』52,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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