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

곡류
곡류
식생활
개념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 발육을 촉진하며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식품은 건강 유지, 성장 발육 촉진, 즐거운 생활 등을 위해 섭취하는 음식이다. 영양성분의 균형이 맞고 소화·흡수가 잘되며 모양·맛·향기·빛깔이 좋아야 한다. 식품은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서 농업과 목축의 시대가 되면서 획기적으로 바뀐다. 우리나라에서 식품 수급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농산물 수입개방이다. 많은 외래 식품 재료들이 공급되면서 국민들의 식생활 양상도 변화했다. 청정 식품이나 생리 활성을 증가시키는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다. 다양한 가공식품의 보급과 미각의 서구화 속에서 우리 식품의 국제화도 중요하다.

정의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 발육을 촉진하며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
개설

영양성분을 함유하는 물질을 식품이라고 하며, 천연식품을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조리, 가공하여 식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도 넓은 뜻의 식품에 포함시킨다. 식품은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동식물별로 크게 나눌 수도 있고, 산업별(농산 · 축산 · 임산 · 수산)로 나눌 수도 있으며, 영양성분별로 분류할 수도 있다.

우선, 영양성분에 따라 분류하면 ① 탄수화물이 주성분이 되는 것:곡류 및 가공품과 , 감자 · 고구마 · 토란 등릐 서류, 설탕 기타 천연감미료, ② 지질이 주성분인 것:유지류 · 견과류, ③ 단백질이 주성분인 것:두류 · 육류 · 어패류 · 난류(卵類) · 유류(乳類) 및 가공품, ④ 비타민과 무기질의 급원이 되는 것:엽채류 · 과채류 · 과일류 · 해조류 및 이들의 가공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산업별로 분류하면 ① 농산물:곡류 · 채소 · 과일 · 전분 · 전분당 · 향신료 · 유지류, ② 축산물:유류 · 육류 · 난류, ③ 수산물:어류 · 패류 · 해조류로 분류할 수 있다.

식품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한 활동을 하기 위하여 섭취되는 것이므로 영양성분의 양과 균형이 맞고, 소화 · 흡수가 잘 되어야 함은 물론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모양 · 맛 · 향기 · 빛깔이 좋아야 한다. 아울러 식품은 유독성분 · 병균 · 기생충 · 부패물 등을 함유해서는 안 되며 경제성도 있어야 한다.

식품의 특성

우리의 주요 식품을 곡류(콩 · 감자류 포함) · 채소류(과일류 포함) · 육류(어패류 포함)로 나누어 특성을 살피기로 한다.

우선, 우리의 주식인 쌀과 맥류는 전분을 많이 함유하여 열량을 보급하는 주체이지만, 많이 먹게 되므로 단백질과 무기염류도 보급해 준다. 곡류는 경제적으로 생산량도 많고 수분이 적으며 저장도 잘 되므로, 예로부터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여 왔다. 우리 국민의 전체 열량 섭취율 가운데 곡류제품이 약 61%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 이후에는 식생활 양상이 서구화되면서 쌀 · 보리의 소비량은 격감하고, 밀가루의 수요량은 많이 증가하고 있다.

곡류의 하나인 콩은 오히려 단백질과 기름을 공급하며, 채소(콩나물) 또는 가공식품도 되는 주요 식품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곡류는 아니지만 전분을 위주로 하는 식품으로서 열량원으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채소와 과일류는 다 같이 수분이 대부분(80∼95%)이며, 약간의 탄수화물과 아주 적은 양의 단백질을 함유한다. 이 중에서 조섬유는 섬유소와 펙틴질 등으로 되어 있어 소화가 되지는 않으나 변비에는 좋은 효과가 있다. 이렇게 채소류와 과일류는 고체물의 함량이 매우 적어서 열량원으로는 빈약하지만, 미량 영양요소인 비타민류와 칼슘 · 철분 등 무기물이 넉넉히 들어 있어 영양적으로 중요한 부식이 된다.

또 식품 가치면에서도 아름다운 색채와 향미 · 신선미가 있어 미관과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 채소 중에는 향신료와 약효를 겸한 것도 많다. 근래에는 재배법과 저장법이 발달하여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연중 어떠한 채소나 과일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육류는 수육류 · 가금류 · 어패류 등을 포함하는데, 다 같이 단백질이 풍부하고(20% 이상) 지방 · 특히 인과 철분이 풍부한함 무기염류 · 비타민(B₁ · B₂ · 니코틴산 등)도 상당히 함유한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 조직 또는 조직의 부위에 따라 물리적 및 화학적 성질에 있어 차이가 나타난다.

육류식품은 영양성도 우수하지만 맛도 좋고 가공성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상품의 가격도 높다. 육류는 아니지만 소나 닭의 생산물인 우유와 달걀도 영양적으로 우수하고 식품 가치도 높으며, 우유가공품인 낙농품들은 고급식품이다. 직접적인 영양원은 되지 않으나 조미료 · 향신료 · 주류 · 차류[茶類] 등의 기호식품은 좋은 맛이나 향미를 음식에 보태 주는 데 사용한다.

식품은 생것을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조리하거나 가공한 것을 먹게 된다. 가공한 식품은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며, 맛과 영양을 원료에서보다 더 높일 수 있어 즐겨 먹는다.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가공한 식품으로는 국수류 · 빵류 · 떡과 과자 · 엿 등이 있다. 또 곡류를 발효시켜 가공식품으로 한 것에는 여러 가지 술 종류가 있다.

콩으로 만드는 가공식품은 콩가루 · 두부 · 된장 · 간장 · 콩기름 · 콩나물 · 대두유 · 과자류 등으로, 예로부터 만들어져 오고 있다. 채소류는 날것으로 먹는 경우도 많지만 조리하여 반찬과 국에 쓰며, 더 나아가 김치장아찌로 발효, 가공하는 데, 이것이 우리 식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서류는 전분 · 과자류 · 술 · 알코올 등으로 가공된다. 과일류는 생으로 식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공되는 형태도 다양하여 건조과일 · 설탕조림 · 통조림 · 과일즙 · 잼 · 과실주 등이 제조된다.

육류의 가공도 다양하여 염지 · 건조 · 훈제 · 통조림 등으로 가공하며, 발효가공을 거쳐 젓갈(어패류) · 간장(어간장 · 육장)도 만든다. 유가공품으로는 분유 · 연유 · 크림 · 버터 · 치즈 · 요구르트 · 음료 등이 있고, 달걀을 원료로 하는 가공품으로는 건조계란 · 피단 · 과자류 · 마요네즈 등이 있다. 기름가공품으로는 식용유 · 튀김기름 · 경화유 · 마가린 · 쇼트닝 등이 있다. 이 밖에 합성 또는 인조식품 · 조미료 · 음료 · 기호식품 등을 들 수 있다.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과정으로는 건조 · 냉동 · 가열 · 밀폐 · 진공 · 압력 · 발효 · 효소처리 · 산처리 · 표백 · 탈색 · 정제 · 식품첨가물 사용 등이 있다. 문화가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식생활도 향상되어 다채롭고 새로운 음식들을 계속 요구하게 된다. 더구나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서양 식품에 대한 취향이 늘어가고 있다. 따라서 서구식 식품의 제조와 현대생활에 적응시킨 새로운 식품의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 육류 소비 증가에 발맞춘 유가공품의 수요 증가, 우유와 유제품 소비 증대, 달걀과 채소 · 과일의 섭취량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즉석식품과 간이식품의 공급 증가도 현저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식품공업 · 식품화학 · 영양학의 발달에 따라 인조식품 · 강화식품(强化食品) · 식품첨가물 등의 제조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식품 발달사

선사시대의 식품

구석기시대의 원시인은 식량을 순전히 자연에 의존해서 해결하였다.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와 조개류를 잡았고, 사냥으로 멧돼지나 사슴 · 새를 포획하였다. 이 무렵에는 포획한 짐승을 생식으로, 또는 구워서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유물로는 공주 유적에서 천렵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기원전 약 3000년부터)에 들어오면서 석기인들은 발달된 석기를 사용하여 식품조리에 끓이는 법을 고안했는데, 여기서부터 토기의 이용이 시작된 것이다.

토기의 생김새를 가지고 빗살무늬토기문화와 무늬없는토기문화로 나누는데, 빗살무늬토기문화기에는 냇물 하류에서 주로 사냥과 물고기잡이를 했으며, 타제석기(打製石器)를 많이 썼다. 무늬없는토기문화기에는 내륙에서도 사냥과 아울러 농경(農耕)이 시작되었으며, 석도(石刀) · 석겸(石鎌) 같은 마석기(磨石器)와 연석(碾石)을 사용하였다. 즉 농작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길들여 양축(養畜)하기에 이르렀다.

신석기시대의 식품으로는 ① 어패류:굴 · 백합 · 성게 · 삼치 · 도미 · 상어 · 고래 · 연어 · 송어 등, ② 동물류:멧돼지 · 사슴 · 소 · 말 · 돼지 · 개 · 닭 · 오리 등, ③ 식물류:도토리 · 밤 · 가래 · 개암 · 비름 · 명아주 · 냉이 · 고사리 · 엉겅퀴 · 칡 · 산초 · 달래 등, ④ 해조류:미역 · 다시마 · 김 등, ⑤ 곡류: · 기장 · · 보리 · 밀 · 콩 · 메밀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석기시대의 음식 조리는 아궁이와 불에 달군 돌[燒石]을 사용하였고, 곡식류를 가공할 때는 갈돌이나 돌절구로 제분하여 죽 · 떡 · 범벅 같은 분식(粉食)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루식품은 나물류와 아울러 소금과 향신료로 조미하여 식용했을 것으로 본다. 이때의 식품 용기로는 · 항아리 · 바리 · 접시 · 병 · 잔[杯] 등이 개발되었다.

신석기시대에 이어 청동기시대에는 농업이 발달하여 벼[稻] 재배도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여주의 흔암리(欣巖里) 주거지평양의 구적지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탄화미(炭化米)가 이를 입증하여 준다. 양쪽 출토 곡물로는 쌀 외에 보리 · 수수 · 조 · 기장 등도 있었으므로 당시의 주식이 이 곡식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의 식품

중국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명도전(明刀錢) · 철제무기 등과 함께 철제농기구가 제조되었고, 주곡(조 · 보리 · 쌀 등)의 재배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부여에서는 목축과 농경이 활발하였고, 동옥저(東沃沮)오곡과 과하마(果下馬)로 유명하였다. 또 낙랑문화에서도 맷돌 · 시루 · 농기구가 발굴되어 증명되었듯이, 벼의 재배와 식용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오곡의 재배와 소와 말의 사육이 활발했는데, 이는 안악 고분벽화에 디딜방앗간 · 부엌 · 육고(肉庫) · 외양간 등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삼한에서도 김해 패총 출토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농경과 수렵 · 어로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으며, 식품의 모습도 일부나마 알 수 있다. 또한 마한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의기(靑銅儀器)에 새겨진 따비 경작 풍경과 곡식을 수확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밭곡식 재배 상황도 상상할 수 있다.

백제신라는 고구려와 각축을 벌이면서도 비옥한 땅과 발달한 수리시설로 오곡 · 채소 · 과일을 재배하는 데 힘썼다. 4, 5세기까지도 맥류(麥類)가 주작물이었으나 그 후로는 벼 재배가 주요 작물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즉, 답(畓) 자와 보(洑) 자를 만들어 쓸만큼 벼 재배가 중요시되었다.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와 신라에서 저수지 기술(韓人池 · 百濟池의 축조)과 양마(養馬) · 양봉 기술, 그리고 개 · 염소 · 양 · 우유 · 매 · 꿩 등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신라에서 이용된 식품으로는 오곡 · 채소 및 각종 육류와 아울러 술 · 기름 · 꿀 · 메주 · 포 · 젓갈 등이 기록에 나와 있고, 빙고전(氷庫典)을 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빙고의 유적은 현재도 경주에 남아 있다. 또 신라에서는 민속(民俗)세시(民俗歲時)인 · 정월보름 · 칠석 · 한가위 · 시월고사 등에 따른 갖가지 음식을 개발했으며,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 많다.

고려시대의 식품

고려는 건국 초부터 권농정책에 힘을 기울였고, 의창(義倉)을 두어 흉년에 대비하는 비축제도를 실시했으며 상평창(常平倉)제에 의해 곡가를 조절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개간사업에 힘쓰고 적전(籍田)의 예식을 베푸는 등 역대로 권농사업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큰 쌀창고 중 하나에는 적미(積米)가 300만(단위 불명)에 이르렀다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도 있다. 즉, 쌀의 증산이 크게 이루어졌고, 맥류 · 기장 · 조 · 수수 · 피 · 콩 · 팥 · 녹두 · 참깨 등의 작물도 재배되었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위에 나온 작물 외에 자두 · 복숭아 · 배 · 대추 · 앵두가 있고 밤 · 개암 · 비자도 있는데, 특히 밤은 크기가 복숭아만하고 맛이 좋다고 하였다. 또 잣과 더덕이 유명하고 차도 산출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고려 토산 차는 맛이 좋지 않아 중국 차를 애용하며 이에 따라 다구(茶具)가 여러 가지로 발달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차도 상당히 발전하여 뇌원차[腦原茶] · 유차[孺茶] · 청태전(靑苔錢) · 대차[大茶] 등 명품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고려도경』의 어업에 대한 기록을 보면, 대부분의 고려 사람들이 해산물을 많이 먹는데 미꾸라지 · 전복 · 방합 · 진주조개 · 새우 · 문합 · 게 · 굴 · 미역 · 다시마 등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고려사』에 의하면 문종 34년(1080) 송나라^44에 보낸 방물에 인삼 1,000근, 잣 1,200근, 참기름 210근 등 식품도 들어 있었으며, 또 문종 6년에는 탐라국(耽羅國)이 세공으로 보낼 귤을 100포(包)로 변경했으며, 문종 7년에는 탐라국 왕자가 헌상한 품목에 소라 · 바자 · 해조 등이 있었다고 한다. 감귤류는 이미 제주도에서 재배되었던 것으로 일찍이 중국 강남에서 도입되었을 것이며, 일본과의 교류도 있었다.

충렬왕 때는 원나라에서 포도주를 보냈으며, 제주도에서는 수유(猷油)가 진상되었다. 공양왕 1년(1389)에 유구(琉球)에서 보내 온 방물 중에는 후추 300근이 있었다. 이와 같이 주변 이웃 나라들과의 교역으로 여러 가지 외국 식품이 들어와 식생활이 더 다채로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원나라의 영향으로 상화(霜花) · 소주 · 설탕 등이 도입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고종 때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의 방중향약목(方中鄕藥目)을 참조하면 고려시대에 식용했던 여러 채소류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즉 무 · 배추 · 동아 · 박 · 순무 · 마늘 · 부추 · 해채 · 상추 · 가지 · 마 · 아욱 · 파 · 양파 · 우엉 · 겨자 · 생강, 기타 여러 가지 나물류를 재배하였다. 이 채소들은 반찬으로뿐만 아니라 약용으로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다.

채소류에 관한 설명은 이규보(李奎報)의 「가포육영(家圃六詠)」에도 나오지만 무는 소금에 절여 구동지(九冬支)에 대비한다고 했으니 동치미나 짠지로 가공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식생활은 불교와 외국(특히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되며, 불교는 국교화하여 살생을 금하는 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가축의 식용이 심하게 제약을 받았다. 따라서 해산물 이용법과 콩 가공법이 발달했으며, 두부 · 된장 · 간장 등의 제조는 사원(寺院)에서 많이 발전시켰다.

또 한편으로는 원나라의 요청으로 말과 소의 목축이 활발해지면서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해의 여러 섬에 목장이 설치되고 종축과 번식이 왕성하였다. 말은 대부분 원나라로 수출되었지만 육식 위주인 몽고족의 영향으로 한때 육식 습관이 자극되었던 모양이다.

가축의 도살은 백정이라는 특수계급이 맡았다. 소는 육우(肉牛)와 역우(役牛)로 이용된 것 외에 우유도 생산하였다. 우유는 영양제 또는 보약으로 잘 쓰였고, 유우소(乳牛所)가 설치되어 궁중에 우유를 공급하였다.

조선시대의 식품

조선시대 후기의 역대 왕들은 쇄신정책의 일환으로 수리사업 · 권농 · 농서 반포 · 구황사업 등에 힘썼으며, 특히 벼 재배에 치중하였다. 『농사직설(農事直說)』에 의하면 쌀 · 보리 · 밀 · 조 · 수수 · 피 · 메밀 · 콩 · 팥 · 깨 등이 여전히 중요한 곡식들이었으나, 특히 쌀의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벼의 재배법 개선과 벼 재배면적의 북방확대 등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한편으로는 채소류의 재배와 가공 이용도 활발해졌음을 『사시찬요초(四時簒要抄)』를 통하여 살필 수 있다. 즉 무 · 순무 · 오이 · 가지 · 상추 · 파 · 마늘 · 미나리 · 부추 · 염교 · 생강 · 박 · 동아 · 아욱 · 산초 등이 많이 재배 · 식용되었으며, 절임 · 김치 · 장아찌 등의 가공도 다양하였다.

과일류에 대해서는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명산지와 아울러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배[梨]는 강릉의 천사리(天賜梨), 정선의 금색리(金色梨), 평안도의 현리(玄梨) 등, 감귤류는 제주도의 금귤 · 감귤 · 청귤 · 감자(柑子) · 유자 등, 감[枾]은 온양의 조홍시(早紅枾), 남양의 각시(角枾), 지리산의 오시(烏枾) 등을 들고 있다.

그 밖의 과일류로는 보은의 대추, 저자도(楮子島)의 앵두, 삼척울진의 자두, 그리고 복숭아는 과천의 반도(盤桃), 전주의 승도(僧桃)가 유명하였다. 수박은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 심었다고 하는데, 충주원주에서 나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하였다.

또한 이 책에서는 어물로서 서해에서 나는 숭어, 강릉 경포대의 붕어, 한강웅어뱅어, 서해의 황석어 · 오징어 · 성게 · 대합 · 청어 · 전복 · 홍합, 경상도 · 강원도해주의 은어, 강릉의 열목어, 평안도 강변의 늘치, 동해의 복어 · 방어 · 연어 · 송어 · 가자미 · 넙치 · 대구 등을 들고 있다. 또 문어 · 정어리 · 도루묵 · 고등어 · 멸치 · 조개류(齊殼, 江瑤柱, 紫蛤) · 새우(大蝦, 紫蝦, 桃蝦) · 조기 · 병어 · 밴댕이 등도 설명하고 있다.

음식류로는 두부 · 대만두 · 다식류 · 밀국수 · 약밥 · 산자 · 떡 · 약과 · 강정류를 소개하고 있다. 술 종류로는 개성 봉상시(奉常寺)의 것이 제일 좋다고 하였고, 또 자주(煮酒)가 더욱 좋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증류주(蒸溜酒)로 소주 같은 술이다.

임진왜란 중국 또는 일본을 통해 1600년대 초기에 들어온 새 식품으로는 호박 · 고추가 있다. 호박은 왜과(倭瓜) 또는 남과(南瓜)라고도 하여 주식 대용과 구황식품, 그리고 채소로 애용되기 시작하였다. 고추는 이전에 귀족만 썼던 값비싼 후추를 대신하여 평민들이 모두 손쉽게 재배해서 먹을 수 있는 양념감이 되어 우리 음식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켰다.

고추는 매운맛뿐만 아니라 붉은 빛깔을 냄으로써 음식에 더욱 잘 쓰이게 되었고, 김치류가 발달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또 고추는 풋것은 채소로 이용하였다. 호박과 고추는 다 함께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으로 전해졌고 16세기에 동양으로 전파된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식량정책은 농작물 증산과 아울러 곡류의 비축, 그리고 흉년에 대비하는 여러 대책으로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천재와 전란 등에 의해 자주 닥쳤던 기근에 대한 비상대책의 하나가 이른바 구황법(救荒法)이었다. 구황법은 구황 서적의 발간으로 많이 홍보되었다. 명종 때 간행된 『구황촬요언해(救荒撮要諺解)』에 의하면, 구황식품으로 솔잎가루 · 솔잎죽 · 볏짚가루 · 메밀꽃 · 콩잎 · 느릅나무 껍질 등을 들었다. 현종신속(申洬)이 지은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에는 도라지 · 칡뿌리 · 마 · 황랍(黃蠟) · 검정콩 · 무씨 · 냉이 · 삽주 · 소루쟁이 등이 더 첨가되어 있다.

왜란과 호란을 연달아 겪은 이 땅에서는 국토의 황폐와 농업 생산의 타격이 심했으므로 재건과 복구에 힘을 많이 기울여야 했다. 한편으로 중국은 청(淸)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일본은 에도(江戶) 막부로 정권이 바뀌어 이들 나라와의 교류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국내 학풍에 실학(實學)의 기운이 짙어졌는데, 이는 전란의 영향과 청나라를 통한 서양 문물의 간접적 접촉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유학자들도 실용후생(實用厚生)의 기풍을 그들의 논저에서 활발히 나타냈다. 그 범위는 제도 · 민생 · 농림업 · 의약 · 군사 · 식품 등에 걸쳐 있었고, 식품에 관해서는 특히 『산림경제』『임원경제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무명(無名)의 규수들이 쓴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규합총서(閨閤叢書)』 같은 요리전서도 나왔다.

『규곤시의방』에는 40여 종의 약주류, 5종의 장류, 8종의 죽류(粥類), 15종의 김치류, 45종의 병과류(餠果類), 10종의 면(麵)과 만두 · 육류 · 어패류 · 기름 등 1600년대의 음식이 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규합총서』는 1824년(순조 24) 이전에 쓰여진 것인데, 이 내용에는 13종의 약주류, 6종의 장류, 9종의 국류[湯類], 10종의 김치, 25종의 생선류, 18종의 육가공품, 14종의 새고기 요리, 67종의 병과류, 10종의 기름이 소개되어 있다. 『산림경제』에는 9종의 다류(茶類) · 국수류, 16종의 국류, 5종의 김치류, 양념류 · 나물류 · 생선류 · 장류 · 주류 · 초(醋) 등이 설명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도 전기에 이어 다양한 식품류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편 다채롭게 개발되어 왔다고도 볼 수 있는데, 불교의 영향도 쇠퇴하고 또 중국의 영향도 있고 하여 육류도 다양하게 조리되고 보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리법은 고추의 재배와 식용이 보급되면서 큰 변화를 하게 되었다고 보는데, 그 변화는 양념과 김치 제조에서 특히 현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치, 특히 김장김치의 대표 격인 통배추김치는 속이 드는, 즉 결구(結球) 배추 품종의 개발과 아울러 고추를 포함한 각종 양념 제조의 발달로 이루어진 것이다.

서양 문물의 간접 도입에 의해 이미 우리나라에 퍼진 농작물에 이어,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온 작물로는 고구마 · 감자 · 옥수수 등이 있다.

고구마는 1763년(영조 39)에 통신사 조엄(趙曮)이 대마도에서 씨고구마를 들여온 것이 그 시초인데, 그 뒤 여러 사람들의 재배 연구로 영남호남에 퍼지게 되었다. 고구마의 재배법과 아울러 고구마의 저장법 · 식용법 등은 『감저신보(甘藷新譜)』 · 『강씨감저보(姜氏甘藷譜)』, 그리고 『종저보(種藷譜)』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마가 들어온 지 약 60년 만에 감자가 북관(北關)을 통해 들어와 단시일에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는 감자가 기후와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크고 재배법과 저장법이 고구마보다 수월했기 때문이다. 고구마와 감자는 식량을 보충하면서 구황식품으로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옥수수도 1700년대에 중국 또는 만주를 통해 도입되었으리라고 보는데, 그 보급은 지지부진하다가 1800년 후반부터 전국 각지에 재배가 파급된 것 같다. 1700년대에는 땅콩 · 토마토[南蠻枾] 등이 들어왔다.

근대의 식품

조선은 고종 연간(1864∼1900)에 들어오면서 근대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내우외환으로 시달리다가 점차 국운은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중에도 서양 문물이 직접 파급되어 정치 · 경제 · 문화면의 근대화를 서두르게 되었다. 그러나 열강 중에서도 일본의 입김이 가장 강하여 결국은 일본 세력하에서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서양 문물의 직접 도입보다 일본을 통한 간접 도입으로 기울어져 갔다.

농업면에서는 일본의 국리(國利)에 맞추어 쌀농사 · 과수 재배 · 목화 경작(인삼과 담배 포함) 등에 주력하여 일본의 벼품종, 일본에서 육성된 서양 과수품종, 그리고 대륙면(大陸棉)을 도입하여 얼마 안 가서 재래품종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 과수 재배도 미국인 · 캐나다인들이 과수원 규모로 시작했던 것이 점차 일본인 자본가들에 의해 규모가 커지면서 각지에 사과 · 배 · 포도 · 복숭아 등의 과수원이 생겨났다. 채소류도 서울 · 개성 등지에서 일찍이 대규모의 민간 재배가 이루어져 있었으나, 중국인들의 채소 재배도 시작되었으며 일본인들의 이주가 많아지자 이들의 채소농장도 늘어갔다.

한말의 개화 바람은 식생활에도 스며들어 와 고위층부터 양요리 · 우유 · 커피 · 서양 야채들을 먹게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식량정책은 미작(米作) 중심으로 나아가 이곳에서 재배된 일본 품종의 쌀은 많은 분량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다. 보리를 비롯한 다른 곡식의 육성과 증산에는 거의 힘쓰지 않았다. 과수 재배도 황주 · 진남포 · 경인간 · 대구 · 구포 · 나주 등지에 걸쳐 더욱 활발해져 오늘날의 사과 · 배 · 복숭아 · 포도 등의 명산지가 되었다. 인삼과 담배는 전매화하여 중요한 재원으로 삼았다.

일본인들이 이민을 통해 한꺼번에 많이 들어옴으로써 그들의 주택가와 상가가 도처에 생겼고 그들의 식품업이 이에 따르게 되어 일식과 양식 음식이 보급되었다. 따라서 일식 요릿집은 물론 일식 식품의 제조업도 번창해 갔다. 예를 들면, 정종 등의 일본 술은 한국 전래의 약주탁주를 압도하여 주류업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맥주 제조도 일본인 자본이 독점하는 가운데에 이루어졌다.

병과류도 일본식과 일본 · 서양 절충식의 것이 많이 보급되었는데 ‘모치’ · ‘센베이’ · ‘요칸’ · ‘카스테라(한국 표준어는 카스텔라))’ 등이 잘 쓰이던 이름들이다. 일본식 밀국수인 ‘우동’도 이때부터 유행식(流行食)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제시대를 겪는 동안 우리의 식생활에 일본 식품이 많이 스며들어 온 것이 광복 후 지금까지도 우리 음식 속에 그 잔영을 많이 남기고 있다.

현대의 식품

만 35년 만에 광복된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채로 각기 일본이 독점하던 모든 사업을 떠맡게 되었다. 식량 확보를 위한 정책, 농업기술의 연구와 보급 등이 모두 우리 손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나, 6 · 25전쟁으로 전국토가 황폐화해졌고, 그 뒤 복구와 재건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1960년대부터 주곡을 자급하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인 결과, 1970년대 중반부터는 쌀의 자급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벼품종의 획기적인 육종과 재배법의 발달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밀의 이용이 급증하여 제빵 · 제면 · 제과가 활발해짐으로써 우리의 식생활에 많은 변화가 왔다. 이와 아울러 우유와 유제품의 수요 공급도 대단히 증가하였다. 그 결과 밀 · 옥수수 · 콩 등의 수입이 증대하여 전체 식량 자급을 저하시키고 있다.

1990년대에 우리 식품 수급의 가장 큰 변화는 1986년 9월부터 1994년 4월에 걸쳐 우루과이에서 열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UR)에 의한 농산물의 수입 개방이다. 수입이 제한되어온 285개 품목의 농산물이 1997년 7월 1일로 자유화되었으며, 이와 함께 많은 종류의 외래 식품 재료들이 수입되어 농산물 유통에 많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새롭고 다양한 식품 재료의 공급 및 소비와 함께 우리 국민들의 식생활 양상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수입식품의 증가와 오염된 자연환경을 피해 생산한 청정 식품 재료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함으로써 농약 및 방부제 처리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식습관의 형태가 열량을 위주로 한 것에서 생리 활성을 증가시키는 비타민 및 무기질 같은 조절영양소에 대한 관심 증가로 바뀜에 따라 과실 및 채소의 급격한 소비 증가와 함께 생산량도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채소는 시설원예(施設園藝) 기술의 발달로 계절에 관계없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으며, 각종 서양 채소의 재배 및 소비도 증가 추세에 있다. 과일은 병충해에 대한 방제기술과 과수재배법의 발달, 제주도 지역의 감귤 재배 확장 및 그 밖의 바나나, 양다래와 멜론류 등 열대과일들의 재배로 이전의 과일류보다 많은 종류가 생산되어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다.

맥주 · 청주 · 소주 · 양주 및 포도주 등의 양조업도 국제적인 제조기술로 생산되어 국내산 제품에 대한 높은 소비 선호도를 보이고 있으며, 외국으로도 수출하고 있다.

아울러 1990년 이후 우리 식생활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편의 식품 및 즉석식품의 급격한 소비 증가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인스턴트 라면, 냉동식품, 햄버거 및 피자와 같은 식품들이다. 이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소비 풍조의 증대에 따른 식생활의 다양화와 서구화 경향에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식품의 선택과 소비

식품의 선택은 여러 각도로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우선 영양적인 면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영양분(특히 탄수화물)과 다른 영양분(단백질 · 지방 · 비타민 · 광물질)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영양학자들은 곡물과 채소 외에 육류와 유제품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식량이 풍부한 공업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아직도 식물 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식량으로서의 식물자원은 지역에 따라 오랜 세월을 두고 다르게 정립되어 왔으며, 각 식량 작물이 농사기술 · 기후 · 토양 · 관습 · 기호 등에 따라 특성적으로 재배되어 왔다.

예를 들어, 쌀은 기후가 온화하고 다습한 동남아 일대, 중국 남부, 한국 및 일본 지역이 강우량과 일조량 등에서 벼농사를 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쌀은 밀과 함께 가장 소비가 많은 곡류로, 세계 대부분의 민족이 주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옥수수 및 감자는 미 대륙 원주민의 주식으로 콜럼버스에 의해 미 대륙이 유럽에 소개(1492년)된 이후 세계적으로 그 재배가 확장되었다. 옥수수는 쌀 · 밀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동물사료로 쓰이고 있다. 근재작물(根栽作物)이라고 총칭하는 감자 · 고구마 · 카사바 등은 지금 일부 국가에서 주식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부식으로 소비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칼로리원으로 섭취하는 이른바 주식이 극히 일부 종류의 곡식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오랫동안의 식습관과 환경조건,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식 가운데 우선 채소류를 보면, 주식인 곡류에 비해 종류도 다양하고 지역적으로나 국가간의 교류가 많아 재배조건만 맞으면 전파도 빠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소비되는 채소류의 대부분은 외래 식물이 소개되어 재배된 것이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 호박 · 고추 · 고구마 · 감자 등이 좋은 예이며, 근래에는 식생활의 일부 서구화 경향에 따라 여러 서양 채소들이 재배, 공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토양 특성에 맞게 자생되어 온 많은 종류의 산나물 · 들나물들이 그 동안에는 계절에 한정된 채 채취되고 이용되어 왔으나, 최근 재배기술이 발달함으로써 대량생산 및 사계절 이용이 가능해지고 있다.

육류는 채취 및 수렵시대부터 중요한 식품으로서 짐승 · 조류 · 어패류 등이 소비되어 왔지만 수육류는 소 · 돼지 · 양, 조육류로는 닭 · 오리 · 칠면조 등이 주로 사육되었고, 어패류는 일부가 양식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어획하므로 각국마다 근해에서 생산되는 어류에 의존하며, 일부는 원양어업에서 공급을 받기도 한다. 상고시대에는 그 많던 곡류가 현대에 와서는 불과 몇몇 가지로 압축되었듯이, 가축류의 수효나 종류가 국한된 것도 사육기술이 발달하여 위험 부담 없이 경제성 있고 식품영양학적으로 우수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나 민족에 따라, 또는 종교상의 이유로 금기가 되어 있는 식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일부 불교국가에서 육식을 금한다든지, 힌두교 민족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든지, 회교국가들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 등이다. 또 미신에 의한 식품 금기도 있어 미얀마 · 벵골 · 자바 등지에서는 임신부나 수유부가 달걀을 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불교가 번성할 때, 또 원나라가 말을 징발함에 따라 쇠고기 · 말고기의 섭식이 억제된 일이 있었고, 지금도 절에서는 육식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민간에는 상극음식(相克飮食)이라고 하여 동시에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짝음식이 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와 꿀, 게와 설탕, 막걸리와 국수, 술과 연시 등이다.

금기식품들과는 대조적으로 식도락 또는 기식(奇食)의 대상이 되는 식품들이 있다. 개고기 · 토끼고기 · 뱀 · 개구리 · 메뚜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구황(救荒)단백질 식품으로 발생하여 지금은 특수한 기호식품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손을 대지 않는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민족이나 국가에 따른 식품의 선택과 소비는 식품을 생산하는 환경과 지역성, 이웃 나라들과의 교류, 경제상태 · 종교 · 미신 · 전통풍습 등의 영향을 받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대부분 탄수화물의 주공급원인 쌀과 밀 같은 곡류를 기본으로 하여 육류 등 동물성 식품과 과채류 등과 같은 식물성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습관을 형성하고 있다. 부유한 선진국가에서는 막대한 곡류를 사료로 하여 각종 육류 · 육가공품 · 유란류(乳卵類) · 낙농식품을 만들어 소비하고 있다. 물론 저개발 국가 및 개발도상국들에서도 식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국제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동물성 식품의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

채소류는 옛날부터 곡류와 더불어 중요시되는 식품으로 계절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했으며, 가공(특히 김치류)을 하여 많이 이용해 왔다. 또한 최근 들어 건강 지향적인 소비자의 인식 증대로 채소류의 소비 증가 및 이에 따른 재배기술의 발달, 종류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인구 증가에 따라 식량 확보의 필요성이 커가고, 이와 함께 농업의 증산 및 전천후 생산기술, 원양어업 등의 발전과 UR 협정에 의한 농산물의 수출입 자유화로 식품의 소비 양상은 세계적으로 평준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문제점 및 전망

인류의 기원을 약 2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약 1만 년 전까지도 오랜 세월의 대부분을 수렵 · 어렵 · 수습 등 자연물에 의존하는 식생활로 지내 온 것이다. 약 1만 년 전에 동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농업이 개발되어 있데, 초기에 재배된 식물은 100∼200가지였으나 차차로 줄어들어 현재는 10가지 내외로 압축되었다.

재배와 축산에 의한 식량 확보는 인구의 증가에 따른 대책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으나 자연물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지구상에서 1,000만 이상의 인구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농축업의 발달과 확산으로 인구를 늘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인구의 증가는 다시 식량 공급에 압박을 가하여 농업 생산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인류의 인구가 10억에 도달하기까지는 200만 년이 걸렸으나, 지금은 2억5000명을 보태는 데 15년(1960∼1975)이 소요될 뿐이다. 이와 같은 인구 팽창으로 생기는 필요식량의 엄청난 증가를 경지의 계속적인 확장과 화학적으로 지향된 근대농업을 통해 충당하기 위해 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농업이라는 기술이 사람의 지혜와 슬기로 발명된 이래 식량공급이 몇백 배로 늘어났지만 아직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은 영양실조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식량 생산이 좇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주식의 대상이 되는 농작물이 10종 내외이고, 그것조차도 밀과 쌀로 집중 강조되어 있어 흉작을 만났을 때의 타격이 그만큼 커지므로 위험율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 농업기술의 근대화에 따라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기후와 생태계 변화에 의한 사막지대의 발생과 확대가 지적되고 있다. 셋째, 공업을 비롯한 산업의 발달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들에서 식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동물성 식품의 요구가 커지고 이를 뒷받침할 축산을 증강하기 위해 곡류가 사료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옥수수와 수수, 그리고 콩 등이 축산으로 많이 돌려지는 것은 전환률이 아주 적은 곡류의 소비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식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식량 확보의 과제로 우선 세 가지 점을 들었으나,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비약적인 농업, 축산업의 기술 발달, 예를 들면 기계화 · 컴퓨터화 · 유전공학의 활용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또 기후 · 계절 · 지역 등을 초월한 시설농업의 발달도 기약할 수 있다.

원시시대에는 수천 종의 식물종자를 수집하여 식량으로 삼았던 것이 농경시대로 들어오면서 100여 가지로 줄어들고, 지금에 와서는 10가지 정도로 주식의 종류가 국한되었다. 그리고 채소류와 과일류의 종류도 주식류에 비하면 다양한 편이나, 이들 역시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같은 식품이라도 먹는 법 · 조리법 · 가공법이 다양하며, 이들 방법도 계속하여 변형, 개발되고 있다. 더구나 국제문화교류에 따라 외국 식품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어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가고 있다. 그리고 인구의 증가, 도시의 발달, 산업경제의 발전에 따라 식생활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면서 식품의 조리가공도 탈가정화(脫家庭化)되고 있어 식품공업의 발달은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분 · 제당 · 주조 · 유지 · 장류 · 제면 · 제빵 · 제과 · 청량음료 · 각종 통조림 · 축산가공 · 수산가공 · 조미료 · 향신료 등 전문화된 식품산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 또 국민소득의 증대, 핵가족 수의 확산, 여성들의 사회 진출 등으로 즉석식품 · 간이식품의 소비가 늘어가고 있다. 또한 식품산업의 발달로 인조단백질 · 농축단백질 생산, 다양한 즉석 및 편의 식품 생산, 식품의 기능성 유효성분 추출 및 이용 확대를 위한 기능성 식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식품산업의 발달에 부수하여 가공식품의 영양문제 · 위생문제 · 공해문제 · 품질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어 국민보건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식품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2000년에 들어와 우리의 식품환경은 농약, 중금속 오염, 일회용품 사용 증가 및 환경오염에 따른 내분비계 장애물질 등의 신규 오염물질 출현, 유전자재조합 식품(GMO) 등 생명공학을 이용한 신개발 식품의 증가와 각종 식품 위해 요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식품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 욕구는 증가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식품산업의 85%가 영세기업으로 안전한 식품 공급에 한계가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식품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국내 식품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있으며,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분산 관리하는 정부의 행정구조상 안전관리에 비효율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국민 건강을 위한 식품안전성 확보라는 큰 목표하에 식품안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제도를 정비, 보강하는 식품정책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가공식품의 보급과 미각의 서구화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 전통음식의 퇴화 또는 소멸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식품에 대한 갈망을 전통음식의 발굴 · 보존 또는 시대 흐름에 맞는 변형 등으로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외국 식품의 도입뿐 아니라 우리 식품의 국제화도 중요하며, 실제로 우리 김치의 해외 진출은 이러한 점에서 선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와 함께 우리 식문화를 국제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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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미디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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