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거시적 단위로 보아 해방 후 50년은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다.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그때 그 광복의 감격과 기대가 반세기에 이르는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조금씩 퇴색하거나 망각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해방은 민족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남북 분단이라는 대결 관계에 놓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구속해 온 것도 명백하다.
빼앗긴 국권, 그러나 국권을 찾았을 때 강대국의 대결의 장으로 분할된 국가와 더불어 사상과 이념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8·15는 해방과 광복의 의미를 지니면서 동시에 분단과 대결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이러한 양면성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낳았고 좌우의 대립은 민족문학의 분열을 낳았으며, 심지어는 남과 북의 서로 이질적인 문학을 낳게 하였다.
시조라고 예외는 아니다. 시조를 보는 시각이 남과 북이 매우 다르다. 한 쪽에서는 시조가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이라면서 무조건 계승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시조를 양반 사대부의 생활 감정과 미학적 요구를 반영한 노래로 보고 무조건 부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관심을 시각에서 실상으로 돌려 북에서는 시조에 대한 획일적인 시각을 버리고 시조의 실상을 깨우치게 하는 일이다. 동시에 남에서는 다시 한번 시조의 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다져야 한다.
해방 직후는 창작의 성과보다 이념의 대립, 정치적인 갈등이 고조되었던 비시적(非詩的) 시대다. 해방의 감격에 압도되어 대부분의 시가 정치적 전언 일변도였다.
양주동(梁柱東)의 「님을 뵈옵고」, 정인보의 「십이애(十二哀)」, 이병기의 「해방전-살풍경」, 박노제의 「해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편들이 당시 시의 정치적 전언이 있을 법한 판에 박힌 상투성과 무관한 것은 시조의 절제된 형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조운의 『조운시조집(曺雲時調集)』(1947), 정인보의 『담원시조집(薝園時調集)』(1948), 이병기의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중판, 1947), 양상경(梁相卿)의 『출범』(1946), 정훈(丁薰)의 『머들령』(1949), 이희승(李熙昇)의 『박꽃』(1947) 등의 출간은 해방 직후 시조계를 대표하는 시사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들 시조는 대부분 해방 후가 아니라 해방 이전의 암흑기에 씌어져서 발표되지 못하고 있다가 출판된 것들이다.
이렇듯 해방 전의 암흑기와 6·25전쟁까지의 공백기를 메우고, 1950년대로 이어주는 과도기적 교량적 역할을 담당한 시인들은 이병기·이은상·조운·이호우(李鎬雨)·김상옥(金相沃)·김어수(金魚水)·이영도(李永道)·장하보 등이다. 그 중에서도 조운은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이들은 주로 『백민』·『죽순』·『영문 嶺文』·『민성』 등을 통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
현대시조에 있어서 1950년대는 주목할 만한 시기다. 1950년의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정규전으로서 세계사적인 냉전의 표출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분단 체제를 한층 강화시키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만큼 6·25의 충격은 해방 후 한국시의 양상을 바꾸는 데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시조의 현대적 성격을 특징짓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에 나온 시조집으로 김오남(金午男)의 『김오남시조집』(1953), 이호우의 『이호우시조집(爾豪愚時調集)』(1955)을 비롯하여 정훈의 『벽오동(碧梧桐)』(1955), 조애영(趙愛泳)의 『슬픈 동경(憧憬)』(1958)이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시조에 관한 연구저서로는 이태극(李泰極)의 『시조개론(時調槪論)』(1959)이 나오기도 하였다. 시조 전문지인 『시조(時調)』(1952∼1953)와 『시조문학(時調文學)』(1960)등도 이 시기에 나왔으며, 한국시조작가협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의 시조는 현실시처럼 서정적 자아가 외향하기도 하고 전통시처럼 내향하기도 한다. 서정적 자아의 외향은 전쟁의 극한 상황을 직접 다룬 이은상의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1958)·「고지가 바로 저긴데」(1956), 최성연(崔聖淵)의 「핏자국」(1955) 등의 시편에서 볼 수 있다.
서정적 자아의 내향은 박재삼(朴在森)·정소파(鄭韶坡)·장순하(張諄河)·최승범(崔勝範)·송선영(宋船影) 등처럼 전통적 서정을 노래하는 시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전통적 상상력을 통한 자기회복, 정체성 확인의 움직임은 1950년대가 거둔 시적 성취다. 그리고 이것은 전후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과 1930년대의 시문학파와 앞 세대의 가람·노산 등의 시조가 계기가 되어 이루어진 문화적 각성과 자연감각이 내면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 수양을 위한 완상의 대상이나 벼슬에서 물러나 숨어서 은일하는 공간, 조선조 시조 이래 오랜 내력을 지닌 유학적인 이념 공간인 자연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자연은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된 자연이다. 자연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자연은 삶의 현실, 삶의 현장 그 자체가 된다. 이들 시에 나타나는 서정은 전후 현실적 상황에 대한 시적 대응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이후에 고조된다.
4·19와 5·16의 역사적 격랑을 겪은 1960년대 이후는 물질주의의 팽배와 사회적 모순으로 물들은 시대이다. 이 시대는 분명 시의 시대라기보다는 산문의 시대다. 아니, 물량화의 시대다. 산문의 시대, 물량화의 시대 속에서 시적 상상력은 비인간화해 가는 현실의 이모저모를 헤아리면서 아울러 그 비인간화 과정에서 인간의 구원을 겨냥하고 있었다.
박경용(朴敬用)·정완영(鄭椀永)·이우출(李禹出)·이우종(李祐鍾)·유성규(柳聖圭)·배병창(裵秉昌)·김준(金埈)·이근배(李根培)·김제현(金濟鉉)·이상범(李相範) 등의 시조에서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시조집으로는 고두동(高斗東)의 『황산시조집(皇山時調集)』(1962)과 정기환(鄭箕煥)의 『시조한국(時調韓國)』(1967), 조종현(趙宗玄)의 『자정(子正)의 지구(地球)』(1969)등이 출간되었으며, 1964년부터는 월간지의 시조추천제 실시하게 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는 어느 때보다 많은 시조시인이 활동을 하게 되는데, 1978년 『문예연감』에 의하면 시조시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180여 명이다. 이 숫자는 60년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양적으로 팽창한 것이다.
시조계로 볼 때 70년대는 외적 팽창에 힘입어 내적인 변화와 실험을 모색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는 60년대의 산문정신을 계승하게 되는데 장순하·서벌(徐伐)·윤금초(尹今初) 등에 의해 사설시조가 시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인인 김상묵(金相默)의 경우도 사설시조에 참여하고 있는데, 산업화이후 급속히 증가한 졸부들의 속물적 행태를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사설시조의 정신과 방법론은 거의 계승하고 있다. 유재영(柳在榮)·김남환(金南煥)·김연동(金演東)·김원각(金圓覺)·박기섭·박시교(朴始敎)·박재두(朴在斗)·백이운(白利雲)·이일향(李一香)·이우걸·이지엽(李志葉)·임종찬(林鍾贊)·정해송(鄭海松)·한분순(韓粉順)·민병도(閔炳道)·조동화(曺東和) 등의 시가 환기하는 주변적 경험 역시 여기에 따라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언어의 광맥을 탐색하고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지나친 관념과 주관에 몰입하기보다는 사물과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의 심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는 이전까지의 세대가 행했던 실험과 모색을 바탕으로 현대시로서의 시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신을 하게 된다. 명칭, 정형형식의 정의, 현대라는 개념과 시조 간의 간극 메우기 등 창작과 연구를 넘나드는 논의들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시조가 현대시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게 된다.
80년대 시조의 흐름은 대체로 자연 관조와 존재 탐구, 일상적 경험의 표현과 내적 성찰, 탈주정적 성향과 실험의식, 현실의식의 반영과 사설시조의 꾸준한 성장으로 전 시대의 경향을 잇고 있다. 여기에 대형 서사시조나 긴 연작시조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어 김종의 「밑불」, 서우승의 「카메라 탐방」등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조주환의 「사할린의 민들레」는 1,226 수의 장편 서사시조로 이들은 평시조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오랜 노력의 결과이다. 이후에는 시조집과 이론서가 대거 출판되고, 한 해 40명이라는 신인이 등단하기도 하여 현대시로 자리 잡게 된다.
1990년대에 와서는 시조의 보편적인 질서보다는 개인적인 질서에 관심을 둠으로써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도 하고 현대시의 경향 가운데 하나인 해체적인 기법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1991년 『한국시조』, 1992년 『시조시학』, 2000년 『시조세계』, 2006년『시조예술』, 『한국시조시학』, 2008년 『시조춘추』등의 시조 전문지가 창간되어 시험적인 창작과 이론연구를 이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