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는 섬이 많은 바다이다. 대체로 서해 남부와 남해의 2,300여 개의 섬들이 흩어져 있는 지역을 다도해라 한다. 다도해의 여러 섬들은 후빙기(약 1만년 전 이후)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해안지역이 침수되면서 형성되었다. 연중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이루며, 육지에서 떨어져 있어 특이한 역사적 배경과 생태적·문화적으로 독특한 지역성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동서 해상 교통로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빼어난 천연의 자연경관이 있는 관광지와 수산물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스의 에게해는 다도해의 예이며, 우리 나라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은 전라남도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서남해안이나 대체로 남해와 서해 남부의 도서 지방을 포함하는 곳으로 이곳을 다도해라 일컫는다. 이 다도해에는 약 2,3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가 전체의 80%이상인 1,891개(유인도 402개 포함)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경상남도에서는 419개(유인도 135개)가 있다. 이 지역은 한반도 동서 해상 교통로에 있어 연중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이루며, 육지에서 떨어져 있어 특이한 역사적 배경과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독특한 지역성을 가지게 된다.
최근 이들 다도해 지역은 잔잔한 바다와 온화한 기후, 그리고 천연의 자연경관이 어울린 명승지가 많아 관광지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 신안군의 홍도에서 여수시 돌산면에 이르는 지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또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경상남도 통영시의 한산도에 이르는 지역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다도해의 여러 섬들은 후빙기(後氷期)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해안지역이 침수되면서 형성되었다. 우리 나라와 같이 노년기성의 저기복산지가 침수될 때는 해안선이 매우 복잡한 것이 일반인데, 특히 노령산맥이나 태백산맥의 여맥들이 바다에 임하는 곳에는 섬 · 만 · 반도가 복잡하게 어울려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다.
이들 만은 매우 깊숙하고 또 섬들이 큰 파랑을 가로막아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지질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이 오랜 지질시대 동안 많은 지각운동을 받아 복잡한 구조를 이루며, 중생대 쥐라기나 백악기의 퇴적암층이 이들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다. 그 밖에 화강편마암을 관입한 화강암이 소규모로 분포, 응회암 등 화산암류도 국지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체로 노령산맥의 말단부에 있는 여러 섬들은 비교적 저평하여 평야들이 곳곳에 소규모로 펼쳐져 있는데 반하여 소백산맥이나 태백산맥의 말단부에 있는 섬들은 산이 높고 산지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주요 섬의 최고봉은 홍도의 고래봉(368m), 진도의 첨찰산(尖察山, 644m), 남해도의 망운산(望雲山, 786m), 거제도의 옥녀봉(555m) 등으로 800m 미만의 섬들이다. 해안지형은 암석해안과 간석지가 대부분이고 사빈의 발달은 적다.
특히, 중생대 퇴적암층인 역암 · 사암 · 셰일 · 이암의 토층들이 발달되어 있는 곳에는 해식애 · 파식대지 · 해식동이나 기암괴석이 발달하여 장관을 이룬다. 이들 해식애들은 섬의 남서쪽에 발달하여 있어서 겨울 북서 계절풍보다 여름 탁월풍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도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 단애는 특히 유명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아든다. 이곳은 해안절경과 오랜 해식작용으로 이루어진 해식애, 해식동과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사빈, 해수욕장 등이 어우러진 해안 경승지이다. 완도 · 남해도 · 거제도 등지에도 소규모의 사빈이 형성되어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다도해 지역은 위도가 낮고 연중 난류가 흘러 비교적 온난다습한 해양성기후를 이룬다. 연평균기온이 13∼14℃, 8월 평균기온이 24∼25℃이며, 강수량은 서남해안 지역이 1,200㎜ 이상으로 비교적 적고, 남해안의 도서 지방은 1,400∼1,600㎜로 우리 나라 최다우 지역의 하나에 속한다. 서남해안 지역의 섬들을 제외하면 겨울 북서계절풍의 풍하지역(風下地域)이 되어 겨울이 매우 따뜻하다. 또한 동지나 해상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남해상을 통과할 때는 겨울에도 강수가 빈번하기 때문에 연중 비가 많다.
특히,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는 태풍의 내습으로 인한 풍수해의 피해가 크다. 다도해 지역은 물이 맑고 기후가 온화하여 우리 나라에서 남국의 정치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일 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전적 기념물과 일화가 곳곳에 산재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와 자연적 의의를 가진 해상 레저 관광지이다.
다도해의 도서 지역에 분포하는 토양은 기반암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연중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적황색 내지 적색 토양이 널리 분포한다. 토양모재는 화강편마암이나 화강암이 대부분이고 화산암 기원의 모재도 일부 분포한다. 화강암으로부터 유래된 토양은 산성의 사질토양이 대부분인데 반하여 화강편마암 기원의 토양은 점토질이 좀더 많다. 조차가 큰 남서 해안의 섬들에는 염류성 토양도 널리 분포하고, 거제도 · 진도 · 남해도 · 완도 등 비교적 큰 섬의 소하천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토가 소규모로 분포하여 경작지로 이용된다.
식생은 연중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인하여 상록활엽수의 난대림이 곳곳에 발달하여 있고, 해안의 절경과 더불어 뛰어난 자연경관을 이룬다. 후박나무 · 참식나무 · 구실잣나무 · 동백나무 · 북가시나무 · 비자나무 등은 대표적인 상록활엽수이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육지부에 없는 특이한 식물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다도해 지역은 대부분 수심 100m이내의 대륙붕 지역으로 구로시오해류가 제주 부근에서 둘로 갈라져 하나는 황해로, 다른 하나는 동해로 들어가는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수심이 얕고 연중 난류가 흐르기 때문에 어종이 풍부하다. 조수간만의 차이는 서남해안 지역이 5m 내외로 크고 한반도의 남동부 해안쪽으로 점차 작아져서 부산 부근에서 1.3m정도가 된다. 조류는 평균 2∼3노트나 섬 사이의 좁은 수로지인 경우 상당한 유속이 되는 곳도 있다. 특히 울돌목은 평균 7.5노트나 되며, 11노트에 이르기도 한다.
육상 식물은 난대림으로 관속식물상(管束植物相)이 거문도 456종, 진도 767종, 완도 832종, 흑산도 · 홍도 534종 등이 자생하고 있다. 이들 중 196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도 천연보호구역의 난대림,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완도 예송리 상록수림,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도 관매도 후박나무가 특히 무성하여 보호받고 있다. 희귀식물로는 홍도의 나도풍란 · 홍도까치수영 · 홍도원추리, 가거도의 풍란 · 흑난초 · 새우난초 · 옥잠난초, 우이도의 백서향과 황근, 거문도의 황칠나무와 박달목서, 하백도의 덩굴옻나무, 흑산도의 흑산억새 등이 있다.
상록광엽수림의 주요 임상으로 구실잣밤나무 · 북가시나무 · 후박나무 · 센달나무 · 참식나무 · 동백나무 · 굴거리나무 · 식나무 · 돈나무 · 감탕나무 · 광나무 · 보리밥나무 등이 있다. 이들 임상에는 자금우 · 백량금 · 마삭줄 · 큰천남성 · 송악 · 모람 · 멀꿀 · 맥문아재비 · 콩짜개덩굴 · 쇠고비 · 봉의꼬리 등이 나무 줄기나 바위 및 지면을 덮고 있다. 상록수림대를 제외한 지역에는 곰솔이 우점군락(優占群落)을 이루어 환경조건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그 밖에 산정부에는 섬회양목 · 소사나무 · 눈향나무 군락들이 분포하고 있다. 성황당의 당산림에는 구실잣밤나무 · 후박나무 · 북가시나무 · 동백나무 및 팽나무 등이 유존식생(遺存植生)으로 보존되어 있다.
해안사구에 서식하는 군락으로는 마편초과의 순비기나무, 벼과의 우산잔디 · 갯잔디, 사초과의 밀사초 · 통보리사초 · 좀보리사초, 메꽃과의 갯메꽃, 석죽과의 갯개미자리, 질경이과의 갯질경이, 앵초과의 갯까치수염, 산형과의 갯방풍, 지치과의 모래지치 등이 있다. 해안 간석지에는 명아주과의 칠면초 · 해홍나물 · 나문재 · 퉁퉁마디 · 갯는쟁이, 벼과의 갈대, 국화과의 갯개미취, 지채과의 지채, 사초과의 천일사초 등 염생식물(鹽生植物)이 대상(帶狀) 또는 군총(群叢)을 이룬다.
육상 동물은 곤충상과 조류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곤충상은 거문도에 74과 192종, 소안군도에 96과 214종, 조도군도에 47과 93종, 신안군의 우이군도에 56과 126종이 조사된 바 있다. 이 중 우점종은 나비목에 속하는 대만수염나방 · 노랑애기나방 · 솔나방 · 굴뚝나비 · 흰뱀눈나비 · 산줄점팔랑나비와,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무당벌레 · 창뿔소똥구리 · 렌지똥풍뎅이 · 애첨풍뎅이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금록잎벌레가 많이 서식한다.
해안사구성 곤충은 11과 9속 21종으로 우점종은 바닷가거저리와 모래똥풍뎅이 속의 모래거저리 등이다. 그 밖에도 칠발도에는 칠점무당벌레가 특정군을 이루며 서식한다. 조류상은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비둘기가 후박나무숲에서 서식하고,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칠발도 바닷새류인 바다제비와 슴새 및 칼새 등이 밀사초군락에 서식한다.
또한 198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산면 구굴도의 바다새류인 뿔쇠오리와 바다제비, 슴새가 천일사초군락에 번식한다. 진도읍 수류리와 군내면 덕병리의 해안 일대에는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조가 도래하는 등 철새들의 번식 · 휴식 및 기착지가 되기도 한다. 난대상록수림에 직박구리 · 동박새 · 섬개개비, 경작지 부근에 딱새 · 노랑때까치 · 알락할미새, 해안 지역에 바다직박구리 · 중대백로 · 왜가리 · 흰뺨검둥오리 · 괭이갈매기 등 약 37종이 서식하고 있다.
수중 동식물은 해조류(海藻類)와 저서동물(底棲動物)로 대별된다. 해조류에는 총 117종이 있으며 이 중 녹조류가 13%, 갈조류가 23%, 홍조류가 64%이다. 우점종은 톳 · 지충이 · 뜸부기 · 갈파래 · 서실 · 미역 등이 있다. 수직 분포상은 조간대(潮間帶) 상부로부터 불등가사리 · 풀가사리 · 바위수염 · 갈파래 · 뜸부기 · 패 · 톳 · 진두발 · 서실 · 작은구슬산호말 · 도박 · 미역 · 모자반류 및 감태의 순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미역 · 김 · 톳 · 모자반 · 우뭇가사리 등의 주산지로 이들은 중요한 수산자원이 된다.
저서동물은 간만의 차가 심한 해안조간대에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거문도 연안에 93과 170여종, 홍도 연안에 138과 226종, 조도 연안에 54과 97종이 조사된 바 있다. 조간대의 수직암벽에는 거북손 · 검은큰따개비 · 굵은줄격판담치 등이 분포한다. 중요 저서동물로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와 홍도 연안에 해삼 · 전복 · 홍어, 우이도에 꽃게, 해남만에 낙지, 여수시 가막만에 피조개 · 새고막 · 꼬막 · 바지락, 여천군 돌산도 연안에 굴 · 멍게 · 전복 등이 있어 주요 수산자원이 된다. 이 밖에도 다도해 연안은 경골어류 중의 갈치 · 말쥐치 · 멸치 · 병어 등의 산란장으로 최적 환경을 이루어 좋은 어장을 이룬다.
다도해 지역은 역사적으로 동서 및 남북 간의 해상교통에 있어 중계지의 구실을 하였던 곳이어서 본토 문화의 확산과 외래문화의 유입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요지이다. 이 지역에 언제부터 한민족이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하였는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조사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대체로 신석기시대 후기에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고 있던 본토 주민의 일부가 남해안 일대로 진출한 것 같다. 흑산도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가 제주도나 일본의 구주(九州)와 오키나와(沖繩)까지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신석기시대 해상을 통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이래 이 지역에는 점차 인구가 증가되었는데, 이는 남방식이나 개석식(蓋石式)의 고인돌과 패총이 흑산도에서 거제도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시대에 있어 다도해 지역은 백제와 일본, 중국과 일본 간의 교역로로 중요하게 되었다.
특히, 신라 말기에 이르러 당나라와 왜의 해적들이 이 지역에 빈번히 출몰하여 횡포를 부리자, 장보고(張保皐)는 해로의 요충지인 청해(淸海)에 진(鎭)을 설치하고 가리포(加利浦)에 성책을 쌓아 항만시설을 보수한 뒤 해적들을 완전 소탕하고 당나라와 왜국과의 삼각 무역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고려 시대에 접어들어 죄인의 유배, 본토 전란에 따른 해안 인구의 피난, 조선 · 항해술의 발달 등으로 인하여 남해 도서에는 이주가 활발하게 되었다. 또한, 원나라에 대항하던 삼별초(三別抄)가 1,000여 척의 배를 몰고 진도에 들어와 대몽항쟁을 하면서 한때 남해의 도서는 삼별초의 해상왕국이 되기도 하였다. 그 뒤 송 · 원 · 왜와의 해상무역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신안군 앞 바다에서 당시 침몰된 무역선의 유품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고려 말에 접어들어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고 왜구의 약탈이 빈번해지자, 남해의 도서들은 일시 인구가 감소되거나 빈 섬[空島]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 다도해의 도서 지방은 한반도 남동부의 배후지에서 모아진 공물을 중앙으로 수송하는 중요한 동서 교통로의 구실을 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우리 수군이 남해의 여러 해전에서 크게 승리함으로써 왜군의 서해상 진출을 좌절시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조선 백자가 다도해의 도서 전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이르러 현재의 유인도는 대부분 주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다도해의 도서는 한반도의 역사 뿐만 아니라 중국 · 일본과의 문화적인 접촉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어,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가 요망되는 곳이다.
다도해의 산업은 지형적 · 위치적 특성 때문에 대부분 수산업과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농업을 겸한 반농반어의 가구가 많다. 총 가구 중 산업별 구성비를 보면 순농업이 전체의 34%, 농업 겸업은 15.4%, 순어업은 16.5%, 어업 겸업은 17.6%, 공무원은 5.6%, 상업은 5.5%, 제조업을 포함한 기타가 5.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특히, 순어업과 어업 겸업, 농업 겸업을 합하면 전체의 49.5%나 되어 다도해의 산업 구성 비율에서 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수산업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업은 도서 면적의 협소로 이용 가능한 경지면적이 적어 극히 영세적이며 농사도 논농사보다 밭농사 중심이다.
토지 이용 현황을 보면 논이 131.6㎢, 밭이 210.2㎢, 임야 662.9㎢, 기타 140.6㎢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지 이용률은 약 29.8%로 전국 도서 평균 28.4%보다는 높다. 호당 경지면적은 0.007㎢로 육지에 비해 농업의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수리시설이 곤란하므로 수리불안전답 및 밭의 비중이 높아 농산물의 생산도 보리 · 콩 · 감자 등 밭작물 중심이다.
그 밖에도 마늘 · 양파 · 무 · 참깨 · 고추 · 유채 등의 생산량이 비교적 많다. 지역별 주요 특산물로는 여수시 남면 금오도의 고구마, 신안군 자은면의 땅콩 등이 있다. 농경지의 면적은 협소하지만 농기계의 보급, 우량 품종의 보급, 경제성 작물의 집중 재배 등으로 농업 소득 증대를 꾀하고 있다.
또한 최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개발로 관광객의 증가에 대비한 관광 농업과 특산물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전체 면적의 57.9%를 차지하는 임야는 면적의 크기와는 달리 산림 형성이 매우 빈약하였으나 산림녹화 사업을 추진하여 1994년에 94% 정도가 입목이 축적되었고 무임목지는 6%로 과거에 비해 산림이 많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수종이 소나무를 중심으로 한 침엽수가 76%를 차지하고 있어 임산자원의 입장에서는 경제성이 낮은 편이다.
수산업은 전업률이 16.5%로 낮고 어선 · 어구 등 어업 장비가 영세하여 근해나 원양어업보다는 연안어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어선은 동력선과 무동력선을 포함하여 1만 4847척을 보유하고 있으나, 총 톤수는 3만 1163t으로 1t미만이 38.9%, 1∼5t미만이 49.7%로 대부분의 어선들이 5t 미만의 소형선박이다. 다도해의 연근해 어장에서 어획되고 있는 주요 어종은 장어 · 삼치 · 멸치 · 새우 · 도다리 등이 있다.
한편, 1970년 이후 양식 기술의 발달로 양식에 의한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는데, 1975년의 17만 1362t에서 1985년에는 35만 4181t으로 매년 약 38%의 증가를 보였으나, 1994년에는 34만 1981t으로 약간 감소하였다. 주요 양식물로는 김 · 미역 등의 해조류와 피조개 · 굴 · 꼬막 등의 조개류가 있다. 지역별 수산물로는 여수시 율촌면의 꼬막 · 바지락, 완도군과 고흥군 금산면의 김, 고흥군 포두면의 석화젖, 진도군 조도면의 꽃게 등을 들 수 있다.
다도해의 교통은 연안항로를 통한 해상교통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도서를 연락하는 기항지로는 목포 · 여수 · 법성포 · 나로도 · 거문도 · 완도 · 진도 등이 있고, 목포 · 여수 등에서 운항하는 항로는 60여개 노선으로 유인도 263개 중 156개에 항로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서가 군청 소재지로부터 50㎞ 이상 떨어져 있어 정기 여객선의 운항이 원활하지 못하다. 전라남도 도서 지역 교통 수단으로 선박은 도선(渡船) 65척, 유람선 30척, 화물상선 27척, 통학선이 9척이 있다.
차량은 관용 208대, 자가용 8,996대, 영업용 653대로 이 중 승용차가 1,954대, 화물차가 3,527대, 특수차가 28대 있다. 어항은 658개로 1종항 2개, 2종항 54개, 3종항 16개, 비법정항 586개이다. 방파제는 319개소에 연장 24,305m이고 물양장은 129개소에 연장은 3만 853m이다. 현재 이 지역의 대중교통 수단인 여객선의 운항 횟수가 적어 교통 수단의 구조적 개선이 이 지역 도서 개발의 최우선 과제이다.
다도해 지방의 취락은 육지에 비하여 택지가 좁고 가옥의 밀도가 조밀하여 부속 건물의 발달이 미약하다. 특히, 어촌은 좁은 해안평지에 위치하는 지형적 제약과 함께 농촌보다도 공동 작업을 많이 해야 하고 넓은 마당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가옥이 밀집 분포한다. 어촌을 기능별로 볼 때 어업에만 의존하는 순수 어촌은 매우 적고, 거주지 주변에 경지가 있어 농업적 요소가 부가된 반농 반어촌이 많다. 그러나 진도와 같이 면적이 크고 비교적 넓은 들이 있는 경우 내륙으로 들어가면 순수 농촌이 비교적 많다.
해상교통의 요지에 발달된 대표적인 취락은 완도항, 고흥군의 녹동항(鹿洞港), 흑산도의 예리항(曳里港) 등이 있으며 대개 이러한 항구는 어항을 겸하고 있어 어선의 출입이 많다. 양식어촌으로는 김 · 미역 · 우뭇가사리 등의 해조류 양식어촌과 굴 · 조개 등의 패류 양식어촌이 있다. 완도군의 여러 도서에는 해조류 양식어촌이 많은 데 반하여 고흥군과 여수시의 도서에는 조개류 양식어촌이 많다. 이 밖에도 수산물을 가공 처리하는 수산 제조 어촌이 완도읍 · 도양읍과 흑산도의 예리항 등지에 발달되었다. 이러한 수산 제조 어촌에는 제빙 · 조선 · 선박 수리 · 수산물 가공 공장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관광취락은 홍도의 홍도리, 진도의 진도읍, 청산도의 도청리, 노화도의 노화읍, 거문도의 동도리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지역의 민가는 구조가 육지부와 다르다. 즉, 이 지역의 민가는 부엌이 민가의 좌우 끝에 있지 않고 방과 방 사이에 있는 중앙 부엌형 민가로써, 모방 · 부엌 · 큰방 · 마루의 순으로 공간이 배열된 4칸집이 많다. 민가의 담을 높게 해서 방풍의 기능을 강화하였고, 지붕의 경사를 낮게 해서 바람의 저항을 적게 한다.
다도해 지역의 인구는 1973년 이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육지부에 비하여 현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의 경우 1979년을 기점으로 큰 감소를 보이고 있는데, 1973년의 48만 4006명에서 1979년 46만 7648명으로 1994년에는 15만 5454명으로 연평균 4.5%의 감소를 보였다. 이러한 다도해의 인구 감소는 자연적 감소라기보다는 인근의 육지부의 지역과 대도시로의 인구 이동에 의한 사회적 감소에 기인한다.
1994년 현재 인구의 성별 구성비를 살펴보면, 남자가 7만 8625명으로 전체의 50.6%를, 여자가 7만 6804명으로 49.4%를 차지하고 있다. 연령별 구성비를 보면, 14세 이하가 2만 5657명(전체의 16.5%), 15∼19세가 1만 7150명(11%), 20∼39세가 3만 9059명(25.1%), 40∼59세가 3만 8012명(24.5%), 60세 이상이 2만 2551명(14.5%)으로 20∼39세의 인구가 가장 많은 점유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경제활동 인구라 할 수 있는 20세에서 60세의 청장년 인구가 전체의 49.6%를 점하고 있어 육지부의 인구 분포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41세 이후의 인구에 대한 성비(性比)를 살펴보면, 남자가 45.8%, 여자가 54.2%로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어, 도서 지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노장년층의 여초현상(女超現象)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학력별 인구의 특징을 살펴보면, 국졸 이하가 5만 8558명으로 전체의 50.1%를 점하고 있고, 중졸 이하는 3만 1948명으로 27.3%, 고졸 이하는 2만 2514명으로 19.3%, 전문대졸 이상은 3,856명으로 3.3%를 점하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는 전체의 22.6%로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다도해의 교육 시설 및 사회복지 · 의료 시설은 육지부에 비하여 매우 영세적이고 부족한 실정이다. 전라남도 도서 지역의 교육 시설은 초등학교(분교 포함) 248개교, 중학교 41개교, 고등학교 15개교가 있다. 학생 수는 초등학교 1만 2061명, 중학교 8,011명, 고등학교 3,773명으로 전체 학생 수는 2만 3845명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15.3%에 해당한다. 전체 유인도 가운데 학교가 없는 도서가 101개나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의 학생수는 매년 7.3% 정도 감소하고 있다. 초 · 중 ·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을 보면 초등학교는 전국 평균치에 가까우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어 도서 지역의 교육 문제가 심각함을 반영하고 있다. 교원은 1,939명이나 복식학급 운영을 고려하면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학교와 학급의 영세성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자녀에 대한 교육적 기대는 매우 높다. 사회복지 · 문화 시설로는 병원 · 의원 · 약국 · 마을 회관 · 마을 문고 등이 있으나, 그 시설은 빈약한 편이다.
다도해의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사찰 및 사적 문화유산과 이 충무공 전적지 및 유물로 대별할 수 있다. 이 충무공 전적 유물로는 명량해협(鳴梁海峽)의 전적지였던 해남군 우수영에 명량대첩비가 있고,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이충무공전적비가 있으며, 덕동리에 충민사(忠愍祠)와 묘당도에 이충무공유적(사적, 1963년 지정)이 있다. 고흥군 도화면 내발리에도 이 충무공 전적 유물이 있고 여수시에는 진남관(鎭南館)을 비롯하여 충민사 · 이충무공수군대첩비, 여수8경의 하나인 고소대(姑蘇臺) · 선소(船所) 등이 있다.
주요 사찰 및 사적 문화유산으로는 신안군 팔금면의 삼층석탑, 도덕도의 신안해저유물, 진도군의 항몽유적(抗夢遺跡)인 남도석성(南桃石城) · 용장산성(龍藏山城), 임회면의 삼별초유적지와 용장사(龍藏寺) 미륵석불, 쌍계사 대웅전 등이 있으며, 고흥군 봉래면의 덕양서원(德陽書院) · 봉래사(蓬來寺), 완도군 완도읍의 장보고유적(張保皐遺跡), 청산면의 하마비와 고인돌 등이 있다.
그리고 무형유산으로는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의 「 거문도뱃노래」가 있다. 남서 해안의 다도해는 1,700여 개의 섬들이 천혜의 해상경관을 이루고 있어 1981년 12월 23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서부 33만 995㎢, 해상 169만 915㎢ 등 전체 면적 203만 91㎢의 이 공원은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에 이르는 478만 62㎢의 해상은 1968년 12월 31일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바 있어, 이들 두 공원을 합하면 다도해 지역은 우리 나라 최대의 관광 지역이 된다. 다도해의 주요 관광지 및 관광자원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여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은 흑산 · 홍도 지구, 신안해안 지구, 진도해상 지구, 만재도 지구, 완도해상 지구, 고흥해안 지구, 거문 · 백도 지구, 돌산 지구 등 8개 지구로 구성되어 있고, 여수시의 오동도와 인근의 여수8경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다도해의 주요 관광지 및 관광자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흑산 · 홍도 지구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홍도 죽정리 앞바다의 남문(南門) · 도승암 · 제비바위 · 병풍바위 · 석화굴 · 용소 · 탕건바위 · 돔바위 · 북문(北門) · 수중탑(일명 부부탑) · 사랑바위 · 돛대바위 등과 인근에 홍도해수욕장이 있으며, 특히 홍도낙조(紅島落照)는 장관을 이룬다. 신안해안의 도초 · 비금 지구는 해식애와 맑은 백사장 등도 좋은 자연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비금도에는 백사장 길이가 4.3㎞이고 송림이 우거진 비금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고 부근에 서산사가 있다.
특히, 조도면 방축리 도덕도 앞바다는 송 · 원대의 도자기가 매몰되어 있는 수역으로 해저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도를 중심으로 하는 진도해상 지구에는 고려 시대 몽고군과 싸우기 위하여 쌓았던 남도석성과 용장산성이 있다. 또한 금골산에는 오층석탑이 있으며, 최근 진도대교와 함께 관광명소로 등장한 울돌목해협이 있다. 그리고 한국판 ‘신비의 바닷길’,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의신면 모도리와 고군면 회동리를 연결하는 회동기적지(回洞奇蹟地)는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지이다.
만재도는 해식애와 해식동 등의 해안경관이 장관이며 39개의 유인도와 141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조도군도(鳥島群島)에는 관매군도(觀梅群島) · 거차군도(巨次群島) · 덜목도 · 백야도 등이 천혜절경을 이루고 있다. 완도해상 지구에도 많은 관광명소가 있는데, 완도항 안에는 상록수림의 주도(珠島)가 있고, 인근에는 5개종의 청환석(靑丸石)의 자갈 해변인 정도리구계등(正道里九階燈)이 있다. 인근의 신지도에는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신지해수욕장이 있고 보길도에는 윤선도(尹善道)의 유적지인 부용동(芙蓉洞)과 보길도해수욕장이 있다. 청산도 · 소안도 · 횡간도 · 고금도 등의 해안경관도 수려하다.
고흥군 나로도 지구에는 나로도해수욕장을 비롯하여 활개바위 · 삼불암 등의 관광 명소가 있다. 인근에는 소록도공원과 소록도해수욕장이 있다. 거문도 · 백도 및 여천 해안도 수려한 관광지이다. 39개의 무인군도와 99개의 기묘한 봉우리들이 모여 이루어진 백도는 기암괴석과 해식애 및 해식동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다도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며 새로운 관광지로 등장하고 있다. 인근의 거문도와 남면의 소라도 역시 수려한 해상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돌산도에는 돌산대교와 해돋이로 유명한 향일암(向日庵)의 일출을 비롯하여 거북바위 · 마당바위 · 흔들바위 등의 명소가 있고, 금오도의 유송해수욕장(柳松海水浴場), 안도의 이이금해수욕장 · 서고지해수욕장 등도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관문인 여수시에는 섬 전체가 동백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오동도를 비롯하여,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성리해수욕장과 경관이 수려한 장군도와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다도해에 있는 여러 섬들은 바다로 둘러싸여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까닭에, 도서 특유의 민속과 무속(巫俗) · 가택신제(家宅神祭) · 암석신앙(巖石信仰) · 수목신앙(樹木信仰) · 자연신앙과 풍수 등의 민간신앙, 그리고 해도적 성격(海島的性格)을 띤 설화 · 민요 등이 있어 다양한 도서문화(島嶼文化)의 유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을 크게 세시풍속 · 당제(堂祭) · 관혼상제 및 의식주 생활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월의 민속 놀이 중에는 대보름날에 행하는 도깨비불보기가 있다. 밤에 산정에 올라가 바다에서 일어나는 도깨비불을 보고 풍어를 점치는데, 도깨비불의 수가 많으면 그 해에 고기가 많이 잡히고, 도깨비불이 희미하거나 그 수가 적으면 흉어가 든다고 한다. 도깨비불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지점과 사라지는 곳에서 많은 고기가 잡히므로 그곳도 알아둔다. 또한, 전염병이 돌면 도깨비가면을 쓴 마을부녀자들이 도깨비불인 횃불을 들고 병을 몰아내는 굿을 한다.
도깨비불보기는 또한 출어시 무인도에 불을 놓아 위쪽이 잘 타면 칠산바다나 연평바다로 뱃머리를 돌리고, 아래쪽으로 타 내려가면 제주도 쪽으로 내려가서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줄다리기는 남녀가 편을 나누어 하며, 부녀자들이 이겨야 풍어가 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줄을 고깃배에 실으면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하여 선주들이 서로 줄을 사려고 한다. 또한 아이를 잉태하지 못한 여인이 줄머리를 달여먹는 풍습도 전해 온다. 노두건너기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보다 노두를 건너는 것이 일이 잘된다 하여 썰물 때 노두를 건너서 내왕한다. 정월달에 고사를 지내고 노둣돌을 뒤집어 놓으면 노두가 파손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을에 우환이 없다.
2월의 민속놀이는 1일을 ‘하드랫날’이라 하여 명절로 쇠기도 한다. 또한, 2월을 ‘영등달’이라 하여 풍신인 영등신을 섬기는 일도 있다. 3월은 3일을 절일(節日)이라 하여 일손을 쉬었다. 4월은 초파일이 있어 불교를 중심으로 한 행사를 가진다. 5월의 단오는 여타 지방의 풍속과 비슷하다. 6월에는 유두를 즐기는데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고 하루를 쉰다. 그리고 유두를 용신 또는 고랑신이 그 해 수확량을 정하는 날이라 하여 간단한 음식을 가지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파묻어 병충해를 방지하는 용왕제를 지낸다.
7월의 행사로는 진도 지방에서 행해지는 질꼬냉이가 있다. 농사가 잘된 부농집 머슴을 소에 태우고 농군들이 돌며, 그 집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여러 사람을 대접한다. 8월은 이 지방에서 가장 큰 명절로 생각하는 추석이 있다. 조상께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하며 강강수월래 · 달마중 등의 놀이를 즐긴다. 이때 몇 가지 속신도 전해지는데 14일 밤 아이들이 콩밭에 나가 발가벗고 자기의 나이만큼 고랑을 기면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이 날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는 속신도 있다. 10월은 상달이라 하여 시제를 지낸다. 많은 가정에서는 성주굿을 하여 집안의 무사와 태평을 빈다. 이 밖에 11월에 동지와 12월의 섣달 행사는 다른 지방의 풍속과 비슷하다.
이 밖의 풍속으로 디딜방아 액막이는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부녀자들이 이웃마을의 디딜방아를 훔쳐 동구 밖에 세운 뒤 깨끗한 부인의 속곳을 입히고 둥근 화상을 그려 놓는 것이다. 속곳을 입은 디딜방아의 가랭이는 무서운 힘이 있어 돌림병을 막고 액살을 퇴치한다고 믿었다. 허수아비용왕신보내기는 갯제를 지내고 짚으로 만든 용신의 신체인 허수아비를 먼 바다로 띄워 보내는데, 그 허수아비가 잘 흘러가야 그 해 풍어가 들고 마을에 탈이 없다. 허수아비가 되돌아올 경우 다시 날받이 제를 지내야 한다.
배발올리기는 가거도(소흑산도)에서 파도가 일고 폭풍이 불어오면 온 마을 남녀노소가 손보다 다섯 배의 힘이 더 있다는 발로 배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이다. 누워서 발로 배를 들어 높은 곳으로 옮길 때 소리를 받아 힘을 모아 부르는 특유한 가락을 가지고 있다. 「배발올리기소리」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기어 애고 자자자
이오찬이다 이오찬
어가 발심 밑창 시게 지게 이오찬이
다 이오찬
어가 디어 이찬이다 이오찬
어가 발심이어 이오찬이다 이오찬
괴목이 깔리네 이찬이다 이오찬
어기어 애고 자자자
자자자 자자자
당제는 다도해의 여러 섬에서 지내고 있는 마을제를 이른다. 당제는 상당제와 하당제의 이원적 제의가 행해지고 있으며, 서로 관련 있는 결합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당제는 수직적 북방대륙의 신앙 형태이고 하당제의 갯제는 해양 도서 민족의 수월용신제와 동일한 유형이면서도 우의적인 신앙 형태를 가지고 있다. 당은 마을의 최고신을 모신 성소이자 세속의 심성을 정화하는 영험 있는 제장이며, 화합과 협동을 꾀하고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마을의 제사이다.
당은 산봉 · 산중턱 · 산밑 · 들판 · 동중 · 동구 · 갯가 등에 조성되어 있으며, 제장으로는 돌담당 · 돌무더기 · 고인돌 · 당나무 · 바위 · 석탑 · 동굴 또는 당사로 된 당집 형태 등이 있다. 당신은 거의가 할머니 또는 할머니 · 할아버지 양위를 모시고 있다. 이들 당신의 신체를 보면, 가거도 대풍리당은 자물쇠, 흑산 진리당은 소저애기씨의 화상, 지편[吉紙] 및 신베[棉布], 태도당은 흰 치마저고리, 나로도 동포당은 연두색 치마저고리, 우이도 진리당은 오색의 할머니 옷베와 할아버지의 바지저고리, 지도의 탄동당은 입석, 흑산 읍동당은 암탑과 수탑을 모시고 있다.
완도 장좌리당을 비롯한 여러 당에서는 백지에 쓴 지편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하의 대리당의 주신(主神)의 신체는 원추 입석위패이고 부신(副神)은 목판위패이다. 거문도 동도리당 · 개도리당 · 죽촌리당, 나로도 신금리당 · 예당리당의 신체는 마신(馬神)이며, 홍도 석촌리당은 성주단지와 신포(神布)를 모시고 있다. 안좌도 대리 하당에는 남근입석(男根立石)이 있다. 방월리 하당은 7기의 지석묘를 칠성의 신체로 삼고 있으며, 상태도 동리당에서는 천연 암석을 보살의 신체로 모시고 있다.
석장승(石長栍)을 모시고 있는 당으로는 지도 당촌리 하당, 비금면 월포리 하당, 도초도 고란리 하당, 진도군 내면 덕별리당을 들 수 있고, 흑산 천촌리당에서는 목장승의 신체를 모시고 있다. 또한, 방액 · 풍요와 기자(祈子)의 신체로써 여러 당에서 노거수를 모시고 있다. 돌산도 임포당의 동백나무, 진도 관매도의 후박나무, 보길도 예송리의 가배나무 등 여러 당산목이 있다. 육지에서 먼 도서의 하당제인 갯제에서 용신의 신체는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이다. 안면을 백포로 덮은 다음, 눈과 코 그리고 입에 음식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며 남근을 크게 만들어 놓는다.
나로도의 수락도당과 우의도 대촌리당에서는 암혈을 당의 성소로 모시고 있다.또한, 경상남도의 미륵도 삼덕리당에는 최영(崔瑩)의 무신도를 모시고 전북특별자치도의 어청도당에는 전횡(田橫)의 무신도를 모신다. 도서 지역의 제일은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4일 사이로 상당제는 야밤의 자시(子時)에 집제하고 갯제는 대낮에 지내고 있다.
제물로는 털이 깨끗하고 뿔이 곧은 소 · 돼지 · 닭 등을 쓰며 비늘이 없는 천한 고기는 제물이 될 수 없다. 제물에는 양념을 하지 않고 소금을 따로 설상한다. 모든 제찬은 홀수로 장만하며 제기에 놓을 때도 홀수가 되도록 한다. 제주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고 선정되거나 깨끗하고 다복한 사람, 또는 신우(神佑)를 받기 위하여 아들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제주는 당외(堂外)의 산재와 당내(堂內)의 치재 때는 당 샘물로 목욕하고 엄한 재계를 한다. 당할머니를 모신 상당은 남제주나 부부가 제를 지내고, 용신이나 당영감을 모신 갯제는 여성이나 마을의 공인이 사제가 되어 제를 지낸다.
장례 풍속으으로는 밤달애 · 여자 상두꾼 · 초분 등을 들 수 있다. 밤달애는 호상을 당한 경우 마을사람들이 출상 전야에 상가에 모여 밤샘을 한다. 초경부터 오경까지 빈 상여를 메고 노는 상여놀이춤과 노래를 곁들인 남사당놀이와 풍자극인 다시래기놀이를 하면서 상주를 위로하고 영혼을 달랜다. 「 진도다시래기」는 네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상두꾼이 제상 앞에 나와 사물을 치면서 산다이가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육자배기로 굿을 이루며 앞놀이를 한다. 둘째, 사재놀이로 도사재와 일직사재가 등장하고 죄인과 그의 처, 동네 어른들이 나와 죄인에게 덕석말이를 한다. 셋째, 상주를 위안하는 개상주놀이가 시작된다. 상두꾼 두명이 상주가 되어 익살스러운 풍자극을 벌인다. 봉사흉내내기 · 곱사춤 · 줄타기 등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넷째, 빈 상여를 마당 굿판에 가져다놓고 한바탕 논다. 이 때 개상주는 뒤를 따르며 우는 시늉을 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중에는 과부들이 많이 사는 과부섬이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초상이 나면 여성들이 상여를 메어 출상하기도 하고 남녀가 같이 어울려 북장단을 치면서 출상하기도 한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매장하는 토장(박장)을 하지 않고 초분(외분)을 한다. 바다가 보이는 산 밑이나 밭둑 또는 가장골(초분골)에 관 크기의 돌대인 덕발을 만든다. 덕발의 돌을 홀수로 깐 뒤 그 위에 짚발이나 대발을 얹고 관을 놓는다. 짐승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멍석으로 관을 덮고 두 개의 조기개로 고정시킨다. 그리고는 서까래를 놓고 마름(날개)으로 이어 용마루를 덮은 다음 새끼로 얽는다. 마름이나 새끼줄은 홀수로 얽어야 하며 왼새끼를 꼬아서 사용한다. 초분은 일년 뒤 헐어 매장할 수 있으나 보통 3년이 지난 뒤 토장을 한다. 초분을 헐기 전에 산신과 지신에게 제를 지낸다. 그런 다음 구관을 뜯어 머리에서부터 차례로 뼈를 들어내어 향물이나 쑥물로 닦아낸다. 솔잎이나 짚으로 만든 솔로 더러운 곳을 털어내고 힘줄이 끊기지 않은 매듭이나 탈육이 되지 않은 곳이 있으면 대칼로 들어내어 세골한 다음 새 관으로 옮겨서 이장지로 간다.
의식주 생활로는 청산도의 구들방논만들기가 있는데, 이것은 주생활화한 것이다. 청산도 양중리 지역에서는 지대가 높고 수리시설이 없어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경사진 산을 개간하여 논을 일군다. 경사가 급한 지대를 평평하게 만들기 위하여 낮은 곳을 돌로 받쳐, 그 위에 방돌을 얹어 자갈을 깔고 자갈 위에 모래와 흙을 덮고 물을 뿌려 평지처럼 다진다. 이를 밑봇굴이라 한다. 여기에 또다시 흙을 깔아 웃봇굴을 만들어 물을 채우고 쟁기질을 한 뒤 모를 심는 이 고장 특유의 풍습이 있다.
다도해는 소원(疎遠), 고립된 지역으로 근세까지 유배자들의 적소였다. 그들은 망망대해의 유배생활을 통해서 호탕한 풍류를 노래하였으며, 이 지역의 주민들도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하여 문학과 예술을 창출하였다. 특히, 바다로 둘러싸여 선박의 표류가 빈번한 곳이어서 표해(漂海)의 기록도 남아 있다. 「최치원전(崔致遠傳)」에 나오는 우이도(牛耳島)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최치원이 이목(李牧)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가는 도중 우이도에 이르니 섬사람들이 크게 환영하고 한발로 죽어 가는 자기들을 문장의 힘으로 기도하여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이에 최치원이 이목에게 부탁하여 큰비를 내리게 하니 섬사람들이 크게 기뻐한다. 이로써, 868년(경문왕 8) 12세의 최치원이 배를 타고 당나라에 건너갈 때 이미 다도해의 고도 우이도에 사람이 살았으며 농사를 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 명종 때의 문신 김신윤(金莘尹)은 진도의 풍광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아득한 마음 그지없는데
작은 배 일렁이며 배회하네.
비가 오니 구름이 섬을 가리고
바람이 이니 물이 하늘에 뜨는구나.
안개와 더불어 사는 신선 못됨을
부끄러워했더니
이제 내가 견우성을 범하는 신선이
되었나니
저기는 무슨 나라 어느 고을인고.
섬 밖에 파란 연기 피어오르네.
윤선도(尹善道)는 1650년(효종 1), 당시 65세 때 보길도에 들어가 20여년간 부용동(芙容洞) 낙서재(樂書齋)에서 생활하면서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관과 강촌의 서정 및 어부의 풍류적 생활을 읊은 「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또한, 암태도(巖泰島)의 서태석(徐邰晳)은 ‘산락도군 복해중 서천만리 벽무서(散落島群伏海中西天萬里碧無西)’의 시문(詩文)으로 다도해의 망망대해를 노래하였으며, 흑산도에 유배온 최익현(崔益鉉)은 흑산 천촌리의 손바닥바위[指掌巖]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洪武日月)’이라고 친필로 쓴 글씨를 새겨 우리 나라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독립된 나라임을 강조하였다.
1801년(순조 1) 12월 우이도에 살고 있던 문순득이라는 어상이 같은 마을에 사는 문호겸(文好謙) · 이백근(李白根) · 박무청(朴無碃) · 이중원(李中原) · 김옥문(金玉紋) 등과 함께 태사도에서 홍어를 사 가지고 돌아오던 중 갑자기 북서풍을 만나 표류되었다. 그러다가 1805년 1월 8일 고향으로 돌아와서 표해시말(漂海始末)과 유구(琉球) · 여송(呂宋)의 풍속 · 궁실(宮室) · 의복 · 선박 · 토산(土産) · 언어 등을 구술하여 정약전(丁若銓)이 소록(所錄)한 것이 문순득(文淳得)의 『표해기(漂海記)』이다. 1818년 유암(柳菴)이 문순득의 말과 정약전의 소록을 참조하여 다시 「표해록(漂海錄)」 · 「여송박제(呂宋舶制)」 · 「차설답객난(車設答客難)」 · 「차설답(車設答)」 등이 서술된 『유암총서(柳菴叢書)』를 저술하였다.
남화(南畫)의 대가 허유(許維)는 1809년 진도에서 태어나 자는 마힐(摩詰), 이름은 연(鍊)이라 불렀는데 뒤에 유라 하였다. 김정희(金正喜)는 허유를 일러 압수이동(押水以東)에는 소치(小痴)를 따를 자가 없다고 말하였다. 김정희와 대흥사(大興寺)의 선승 초의(草衣)의 영향으로 그는 일생을 고고하고 담적하게 보냈다. 그의 담채 산수화 등에 나타난 필선과 조형에는 다도해의 한적한 바다와 산, 그리고 기암괴석의 운치가 서려 있다. 그는 49세 때 진도 의심면 사천리에 운림산방(雲林山房)이라는 화실을 짓고 작품 활동을 하다가 1892년 85세로 죽었다.